역사적인 사진의 뒷이야기 ㉖ 이름이 욕이 된 남자 ‘비드쿤 크비슬링(Vidkun Quisling)’
1943년 6월 14일 오순절, 노르웨이 남동부 호르텐에 있는 보레 국립공원(Borre National Park)에 설치된 독일-노르웨이 나치친위대(Germanske-SS Norge) 청소년캠프를 시찰하는 비드쿤 크비슬링(Vidkun Quisling)의 모습.
비드쿤 크비슬링은 노르웨이의 친나치 정치인으로 독일이 노르웨이를 점령한 이후 1942년 2월 1일부터 꼭두각시 총리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재직했다. 비록 친나치 괴뢰정권에 불과했지만 최고자리에 오른 그에게 히틀러를 부르는 칭호인 ‘퓌러(Führer, 총통)’가 이름 앞에 붙기도 하였다.
하지만 몇 년 후 크비슬링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을지를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는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고 횡령, 살인, 조국 노르웨이에 대한 반역죄 등의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 체포된 ‘퓌러’ 비드쿤 크비슬링
그리고 1945년 10월 24일 새벽, 오슬로 아케르스후스 요새(Akershus Fortress)에서 총살형에 처해지며 생을 마감했다.
▲ 1945년 10월 24일, 눈을 가리고 최후를 맞는 크비슬링(1887~1945)
크비슬링에 대한 단죄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단어 ‘크비슬링(Quisling)’은 간첩활동을 하거나, 비겁하거나, 배신을 잘하는 인간 유형을 나타내는 대명사가 되었고 사기꾼이나 절도범 같은 범죄자를 가리키는 단어가 되기도 했다. 또 누군가와 싸우는 상황이거나 바람을 피우는 애인에게도 ‘빌어먹을 크비슬링!‘이라는 욕이 쏟아졌다.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quisling’
이 새로운 욕은 너무나도 흔하게 사용되고 폭넓게 받아들여져서 오늘날 사전에도 올라와있을 정도로 당시 그에 대한 노르웨이 국민들의 분노를 가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