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올림픽 마스코트, ‘미샤’의 최후
1980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22회 올림픽은 한국과는 큰 인연이 없는 대회이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한 미국이 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동맹국인 한국도 이에 동참해 불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유튜브나 자료사진으로 당시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게 되었는데, 특히 폐회식은 감동적인 연출로 참석자들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당시 폐회식의 주인공은 마스코트였던 불곰 ‘미샤(Миша/Misha)‘였다.
▲ 디자이너 빅토르 치지코프와 미샤 초기 디자인. 미샤의 풀네임은 ‘미하일 포타피흐 톱티긴’이다.
미샤가 대회 마지막 밤, 세계인들과의 작별이 아쉬워 눈물을 흘리는 모습과 먼 하늘로 떠나가는 장면은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는 명장면. 이 폐회식 쇼는 무려 2년 이상을 계획하고 준비하였다고 한다.
눈물을 흘리는 미샤
올림픽 주 경기장인 레닌 중앙 경기장(루즈니키 스타디움)의 관중석 맞은편에서는 4,500명의 군인을 동원한 카드섹션으로 원래는 그냥 미소 짓고 있는 미샤만을 표현하게 되어있었다.
▲ 미샤 카드섹션
그런데 연습 도중 고문관 하나가 카드를 거꾸로 들어서 흰색 점이 생겨버렸다. 즉각 연출 감독은 확성기를 들고 “우측에서 30번째 거꾸로 든 동무 똑바로 드시오!”라고 했는데 해당 줄의 몇몇이 본인 얘기인 줄 알고 카드를 뒤집어버렸다.
▲ 실수로 탄생한 미샤의 눈물
그러자 이 모습이 마치 미샤가 눈물방울을 주르륵 흘리는 감성 어린 연출이 되어버렸다. 연출 감독은 실수에서 비롯된 이 장면을 공식무대까지 그대로 가져갔고, 직접 폐회식을 관람한 사람들에게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이 되었다.
▲ ‘흑흑…모두 안녕’
하늘로 날아가는 미샤
폐회식이 끝남과 동시에 앞발을 흔들며 하늘로 날아가는 미샤는 소련고무공업연구소가 수없이 많은 테스트와 점검을 거친 끝에 만약을 대비해 3개를 제작하였다.
▲ 완성된 미샤풍선
원래는 높이 8m, 무게 40kg의 풍선에 헬륨가스를 채워 이륙할 계획이었는데 겉면에 페인트를 칠하고 벨트 등 장식을 달다 보니 70kg까지 무게가 늘어나버렸다. 어쩔 수 없이 뜨기 위해 헬륨 풍선을 추가로 주렁주렁 함께 단 모습이 되었다.
이 ‘풍선 이별’은 기상조건이 좌우했기 때문에 어쩌면 도박에 가까운 계획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조명이 비추는 가운데 멋지게 날아올랐고 관중들은 환호하며 성공적으로 폐회식을 마쳤다.
▲ 날아가는 미샤를 보며 환호하거나 눈물짓는 관중들
모스크바 올림픽이 끝나고도 한동안 ‘날아가는 미샤를 보았다’는 낭만적인 목격담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이 풍선을 회수하는 것도 이미 소련 정부의 계획하에 있었다.
▲ 모스크바 폐회식 기념 우표 (2000년)
미샤풍선은 발사 직후 특수밸브가 열리며 헬륨가스가 점차 배출되게 만들어졌고, 계획대로 1시간 후 땅에 착륙한 것을 검색팀이 회수해갔다.
원본 곰은 착지 과정에서 손상을 입은 터라 이후 미샤의 복제품이 전 러시아 박람회장(VDNKh)에 전시되었다.
▲ VDNKh에 전시된 미샤풍선 복제품
한동안 서독의 수집가들이 소련 정부를 상대로 원본 미샤풍선의 구매를 의뢰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주적인 서구진영으로의 판매는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장기보관시설도 아닌 일반창고에 처박혀있던 원본은 쥐들이 갉아먹고 고무 재질이 삭아버리면서 폐품으로 처분된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