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육군병원의 마릴린 먼로와 1954년 한국방문
1954년 2월 5일, 일본을 방문한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1926~1962)가 도쿄 육군병원의 주일미군 부상병들을 위문했다.
당시 먼로는 척추골절 부상을 당한 군인이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자 침대 밑으로 내려가서 웃어주는 팬서비스를 선보이며 감동을 안겨주기도 했다.
▲척추치료를 받는 장병을 위해 침대 밑으로 내려간 먼로
또 부상병들의 깁스에 사인을 해주는 등 병동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는데 이를 두고 일본 신문은 ‘먼로의 행동은 페니실린 이후 가장 위대한 치료법’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 부상병의 깁스에 사인중인 모습
마릴린 먼로의 일본과 한국 방문
마릴린 먼로가 일본을 방문한 것은 신혼여행이 목적이었다. 그녀는 1954년 1월 1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 MLB명예의 전당에 오른 위대한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Joseph Paul “Joe” DiMaggio, 1914~1999)와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일본은 전후 재건의 시대로 1908년 시작된 미일 올스타전도 1949년부터 다시 재개되었는데, 이때 ‘근대 일본 야구의 아버지’라 불리는 레프티 오돌(Lefty O’Doul)은 일본에 머물며 선진야구기술을 전수하고 있었다.
조 디마지오가 프로야구에 첫 번째로 몸담은 샌프란시스코 씰스(San Francisco Seals)의 감독이 레프티 오돌이기도 하였으며, 디마지오는 레프티 오돌과 함께 1951년 제3회 미일 올스타전에 참가해 5만 명의 관중 앞에서 선수 경력을 마감하는 등 야구인생의 처음과 끝을 함께 했다.
▲ 제3회 미일 올스타전 기념책자
이런 인연으로 은퇴 3년 후 결혼식을 올린 조 디마지오에게 일본으로의 신혼여행을 권유한 것도 레프티 오돌 감독이었다.
그는 요미우리 신문사의 사주였던 쇼리키 마쓰타로(正力松太郎)의 후원을 받아 디마지오와 함께 일본에 미국식 훈련을 전수하는 프로그램을 미리 계획하고 있었고, 24일간의 방문 동안 디마지오는 일본 프로야구팀 6개 구단과 함께 훈련을 하며 기술을 전수했다.
▲ 먼로와 디마지오 부부
일정 중 마릴린 먼로의 한국 방문도 미리 계획되어 있었다.
2월 1일,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에서 오전 2시 도쿄행 비행기를 탄 마릴린 먼로에게 크리스텐베리 장군은 한국에 위문공연을 갈 의향이 있는지 떠보았고 그녀는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이에 극동사령부의 존 E. 헐(John E. Hull) 장군이 공식 초청을 하며 한국 방문이 최종 결정된 것이다.
일설에 따르면, 일본을 방문한 신혼부부를 향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마릴린 먼로에게만 집중되자 그녀 못지않은 스타인 조 디마지오가 불쾌감을 느꼈고 결국 마릴린 먼로 홀로 즉흥적인 초대를 받고 한국을 방문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 일본을 방문한 마릴린 먼로
물론 ‘먼로 허리케인(Monroe Hurricane)’이라 불렸던 일본 국민의 엄청난 열광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위에 말했다시피 디마지오는 이미 야구투어가 잡혀있는 상태였고, 먼로의 한국 방문 역시 미리 약속이 된 일정이었기에 이는 호사가들이 지어낸 낭설일 뿐이다.
▲ 미군 캠프를 방문한 모습
마릴린 먼로는 1954년 2월 16일에 내한하여 1954년 2월 19일까지 머물며 10만여 명의 군인을 위해 10회의 공연을 가졌다.
한국 방문에 앞서 맞아야 했던 수많은 예방접종은 먼로를 피곤하게 만들었지만 열광하는 군인들을 앞둔 무대에서는 너무나 행복하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마릴린 먼로의 한국에서의 공연모습
이는 연기가 아니었다. 마릴린 먼로는 자신에게 열광하는 수많은 군인들의 모습에 실제로 큰 감동을 받았다.
그녀는 한국 방문 전까지는 본인이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한국 여행은 내가 국제적인 스타가 되었음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