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이야기 ㊴ 1930년대 후반, 런던과 경성의 등화관제

두 명의 신사가 흑백 체크패턴으로 페인트칠이 된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 얼핏 영화제나 패션 컬렉션의 개막을 알리는 장면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모습은 영국 런던 전체가 끔찍한 전쟁에 앞서 대비를 갖추던 시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에 일제의 식민지였던 한반도 역시 적국이었던 중화민국의 공습에 대비해 경성은 물론 지방의 도시들도 등화관제를 실시하였다. 1

 

런던의 등화관제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것을 결정하기 이틀 전인 1939년 9월 1일, 적국인 독일 항공기의 정찰이나 야간공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도시의 모든 조명을 제한하는 등화관제(燈火管制, Blackout)가 실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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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열차의 커튼을 닫고 있다.


하지만 전시라도 급한 용무가 있는 사람들이나 관용차, 구급차와 같은 차량들의 통행은 필요했다.

 

런던 시 당국은 최소한의 조명으로 시민들이 필수적인 야간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로와 주요건물에 흰색 페인트로 줄무늬를 꼼꼼하게 도색했다. 오늘날 야간의 환경미화원이나 교통경찰의 복장에 반사띠가 들어가 있는 원리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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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런던거리의 계단, 도로가 꺾이는 커브, 인도와 차도의 경계, 가로등, 가로수에 흰색 페인트로 칠한 줄무늬가 생겨났고 이는 전쟁을 상징하는 패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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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로수에 페인트를 칠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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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도와 인도의 경계에 패턴을 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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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색 페인트를 칠한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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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량 모서리, 인도와의 경계, 가로등, 소화전에 페인트가 칠해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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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 중인 개와 주인 모두 눈에 잘띄는 흰색 조끼를 착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기 런던시민들에게는 작은 손전등이 필수였으며,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내용처럼 흰색 줄무늬를 길잡이로 삼아 야간활동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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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노출 촬영한 야간의 런던. 인도의 불빛은 손전등이다.

 

경성의 등화관제


같은 시기, 동북아시아는 일본제국과 중화민국이 전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이에 일제의 식민지였던 한반도 역시 적국이었던 중화민국의 공습에 대비해 경성은 물론 지방의 도시들도 등화관제를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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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8년, 종로구 원남동의 방호상황을 점검하는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오노 로쿠이치로(大野緑一郎, 1887~1985)


1937년에는 경성 소방본서에서 단추를 누르면 시내 다섯 군데에 설치된 비상 사이렌이 울리는 방식이 채택되고 있었다.

 

사이렌이 10초 울리고 10초를 쉬었다가 다시 10초간 울리면 도시를 은폐하라는 경계관제를 의미하였고, 1분간 ‘뚜-‘하는 소리가 지속되면 적의 항공기가 상공에 떠 있는 상황의 공습관제가 실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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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7년, 경성에 설치된 사이렌


어느 쪽이든 자동차와 전차 등 모든 교통은 무조건 멈춰야 했고, 대기하던 방호단원은 즉시 출동하여 각 가정과 산업현장의 소등을 지시하는 등 정해진 임무를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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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8년, 공습관제가 실시되자 자전거를 멈춰세우는 모습(위), 불꺼진 전차의 내부(원), 방호단원들이 돌아다니며 불빛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창문에 종이를 붙이는 모습(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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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년, 경성부민들의 이동을 막는 방호단원


중국의 폭격기가 한반도의 도시를 향해 항진하는 상황이 발생하여 사이렌이 울리면 즉각 경성은 암흑에 빠졌다.

 

훈련이든 실제상황이든 서해상의 일본함대가 적기를 발견해 격추하고 나서야 등화관제는 해제되어 일상으로 돌아가는 전시체제는 일제의 패망까지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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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년, 빛을 가릴 것을 지시하는 방호단원들


이런 등화관제 중에는 웃지 못할 상황도 발생하였는데, 집안의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검은 헝겊이나 마분지로 등을 쌌다가 불이 나서 주택이 전소되는가 하면, 갑작스러운 소등으로 미아가 발생하기도 하였고, 어둠을 틈타 도둑질을 벌이던 일당이 체포되는 사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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