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 결승선에 들어온 최초의 나이키 운동화

나이키는 오늘날 세계 최고의 스포츠메이커중 하나로 군림하고 있지만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발돋움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신생 메이커였다.

 

1964년 1월 25일, 블루리본 스포츠(Blue Ribbon Sports)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이 회사는 오니즈카 타이거를 수입해 미국 시장에 판매하는 업체였지만 71년 ‘나이키(Nike)’라는 이름으로 리브랜딩 하며 지금은 전 세계인이 다 알고 있는 ‘스우시(Swoosh)’ 로고와 함께 새 출발을 했다.

 

나이키는 오늘날 세계 최고의 스포츠메이커중 하나로 군림하고 있지만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발돋움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신생 메이커였다. 1
▲ 나이키 로고 변천사


때마침 1970년대 미국에는 조깅 붐이 일기 시작했다. 신생 스포츠메이커인 나이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사 제품을 현역 선수들이 신고 일구어내는 성과였다.

 

JUST DO IT. 나이키의 도전


이때 1972 뮌헨올림픽 마라톤 미국예선에서 나이키 슈즈를 착용한 마크 코버트(Mark Covert)가 2:23:35의 기록으로 7위를 차지했다.

 

지금이야 나이키 제품을 착용한 유명선수들이 한대회에서만 따내는 메달도 일일이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지만, 이 모습은 나이키 슈즈를 신은 선수가 최초로 공식 대회의 결승선을 통과한 역사로 남아있다.

나이키는 오늘날 세계 최고의 스포츠메이커중 하나로 군림하고 있지만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발돋움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신생 메이커였다. 3
▲ 마크 코버트(우측에서 세번째)


그해 뮌헨올림픽 육상 미국대표 선발전이 열렸던 오레곤주에서 대중의 관심은 지역이 배출한 스타 스티브 프리폰테인(Steve Prefontaine)의 5000m 경기에 철저히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무명 선수였던 마크 코버트가 두 차례나 올림픽에 나갔던 케니 무어(Kenny Moore), 1972년 뮌헨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리스트인 프랭크 쇼터(Frank Shorter)와 예상치 못한 선두그룹을 형성하며 ‘마크 코버트가 올림픽에 나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이끌어내며 역주를 이어나간 것이었다.

 

나이키는 오늘날 세계 최고의 스포츠메이커중 하나로 군림하고 있지만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발돋움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신생 메이커였다. 5
▲ 역주하는 마크 코버트


하지만 그는 32km 지점에서 계속 뒤처지며 경기장이었던 헤이워드 필드(Hayward Field)에는 결국 7위로 입장했다. 그런데 그 순간 코버트의 눈앞에는 마치 프리폰테인이 나타난 것처럼 기립박수를 치는 관중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날 무명 선수가 일구어낸 불굴의 의지는 ‘평범한 약자의 도전’이라는 신생업체 나이키의 이미지를 보여준 한 편의 드라마였다.

 

나이키는 오늘날 세계 최고의 스포츠메이커중 하나로 군림하고 있지만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발돋움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신생 메이커였다. 7
▲ 나이키로부터 티셔츠 두 장을 받고 신발을 착용했던 마크 코버트


당시 올림픽 예선에 참가한 선수들을 위해 제작된 신발이 1972 나이키 와플 레이싱 플랫 ‘문 슈’(1972 Nike waffle racing flat ‘Moon Shoes’)로 총 10켤레가 제작되었으며 그중 5켤레가 올림픽 예선에 참가한 선수들에게 제공되었다.

 

선수들이 달릴 때 마찰력을 높이고 쿠션을 향상하기 위해 고민하던 나이키의 공동창립자인 빌 보워만(Bill Bowerman)은 와플 기계에서 영감을 받은 밑창 ‘와플 솔(Waffle sole)’을 고안해냈다.

 

나이키는 오늘날 세계 최고의 스포츠메이커중 하나로 군림하고 있지만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발돋움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신생 메이커였다. 9
▲ 와플 형태의 밑창


와플 솔은 마치 달에 착륙한 우주비행사의 발자국과 같은 모양을 남겼기 때문에 ‘문 슈’라는 애칭이 붙었다고 하는데, 암스트롱이 남긴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라는 말처럼 나이키에게도 마크 코버트의 작은 쾌거는 거대기업으로 성장하면서 큰 족적이 되었고, 결국 그의 이야기는 1991년 나이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스니커즈


나이키는 오늘날 세계 최고의 스포츠메이커중 하나로 군림하고 있지만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발돋움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신생 메이커였다. 11

▲ 마크 코버트가 신었던 신발. 조던 겔러(Jordan Geller)소유


‘문 슈’는 각 출전 선수들의 발에 맞춰 완전히 수제 제작되었고 시장에 출시되지도 않았기에 더욱 희귀한 극 한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난 2019년 이 신발 중 하나가 소더비 경매에 출품되었다.

 

나이키는 오늘날 세계 최고의 스포츠메이커중 하나로 군림하고 있지만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발돋움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신생 메이커였다. 13
▲ 경매에 출품된 문 슈


과거 신발끈도 없고 밑창도 없는 문 슈가 11,200달러(한화 약 1254만 원)에 팔린 적이 있고 손상되지 않은 문 슈는 보통 11만~16만 달러 정도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었는데, 당시 출품된 신발은 10켤레 중 유일하게 누구도 신은 적이 없는 새 신발이어서 경매가도 높게 나올 것으로 예상되었다.

 

나이키는 오늘날 세계 최고의 스포츠메이커중 하나로 군림하고 있지만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발돋움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신생 메이커였다. 15
▲ 이 상태로도 11,200달러


결국 이 귀한 신발은 캐나다의 사업가 마일스 스펜서 나달(Miles Spencer Nadal)이 437,500달러(한화 약 5억 원)에 낙찰받으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스니커즈로 기록되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