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화혁명] 홍위병의 진상 폭로수기 ①

이 글은 16세의 어린 나이에 중공의 소위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에 가담하여 복건성(푸젠성) 홍위병 지도자로 있다가 중공 본토를 탈출한 한 고교생의 수기이다.

 

그는 1968년 7월 중공을 탈출, 금문도(金門島) 연안 어느 조그만 섬으로 헤엄을 쳐 와 자유세계의 품에 안겼다.

 

그의 탈출 동기는 단순치가 않다. 문화혁명의 진전과 더불어 홍위병이 점차 버림을 받게 되면서부터 그는 자신의 장래가 암담하리라고 느꼈으며, 홍위병이 순전히 이용물에 불과했었다는 것을 깨닫고부터 그는 중공의 현실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중공을 탈출하게 한 중요한 동기 중의 하나다.

 

이 소년의 이야기는 현 브루클린 대학의 이반 런던 박사 지도로 이뤄지고 있는 중공의 정치심리학 연구계획의 일환으로 편집된 자료 중의 하나다. 지금도 중공에 남아있는 이 소년의 가족들을 위해서 소년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으며, 여기에 관련된 모든 인물들의 이름도 가명임을 밝혀둔다. 본지에서는 최근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실린 수기를 전역 연재한다. (동아일보 1970년 1월 20일)

 

▲ 문화혁명의 주역 홍위대가 모택동의 초상화를 앞세우고 북경거리를 행진하고있는 장면. 1967.01.27

– 보복 기회로 삼아
– 스승의 오십조 죄상(五十條罪狀) 들추기
– 아모이에도 변혁의 된바람

 

1966년 6월 1일, 문화혁명의 거센 물결은 이윽고 중국 대륙의 남부 복건성(福建省)의 조그만 항구도시 ‘아모이(廈門, 하문)’에 자리 잡은 우리 학교에까지 밀려들었다.

 

혁명의 물결은 그 반혁명적 독초라고 불리던 문학, 연극, 영화에 대한 비평이 신문지상을 장식하고 있을 무렵인 5월부터 실제적으로 눈에 띄게 밀려들기 시작했다. 바깥 혁명의 소용돌이가 교실로 스며들면서부터 선생들은 기력을 잃어버렸고 표정에는 불안의 그림자가 감돌기 시작했다.

 

선생들 중 많은 수가 이 반혁명적 독초의 숭배자였으므로 그때부터 학생들을 대하는 선생들의 태도는 무척 조심스러웠으며 신상에 관한 이야기도 학생들에게 일절 하지 않았다. 혼란과 시련의 시대에 살고 있는 나와 같은 세대의 중공 젊은이들은 정치적인 사건에 대해서 신경이 민감하게 돼있었다. 선생들의 불안한 표정을 읽으면서 우리들은 9년 전 그 잔인스러운 그 반우익 투쟁이 가져다준 혹독한 시련을 선생들이 또다시 겪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들은 변혁의 새물결이 밀어닥칠 것을 예상하고 있었으나 막상 그것이 닥쳐왔을 때의 충격은 큰 것이었다.

 

6월 1일 새벽 5시, 나는 대중연설 방송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영문을 알지 못한 채 나는 흥분하여 학교로 달려갔다. 여름철엔 아침 7시 30분에 수업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날 따라 대부분 학생들은 7시경에 이미 학교에 와 있었다. 그들도 방송을 듣고 달려온 것이다. 오전에 수업은 없었다.

● 강청(江靑)등의 장광설을 녹음방송

9시경, 전 교사들과 학생들이 운동장에 집합했다. 여느 때는 선생들이 줄을 바로 잡느라고 정렬한 우리들 사이를 왔다 갔다 했지만 그날따라 선생들이 우리들 열밖에 따로 줄지어 서 있는 것이 이상했다.

 

이윽고 우리들은 학교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중앙정치국이 국민에게 보내는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그것은 청화대학 부속고교 및 몇몇 고교에서 맨 처음 홍위대를 창설하면서 가진 식전에서 주은래와 강청(江靑, 장칭), 진백달(陳伯達) 등 거물급 지도자들이 행한 연설을 녹음한 것이었다.

 

방송을 통해 모택동의 처 강청은 이번 문화혁명이야말로 역사상 유례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수정주의를 완전히 뿌리 뽑는 것이 문화혁명의 의미이자 목표라고 설명했다. 주은래는 문화혁명의 강령을 통해 국민학교를 제외한 모든 대학, 고등학교, 기술전문학교는 문을 닫는다고 말했다.

 

중학교는 그날 오전에는 수업을 가졌으나 오후에는 새 혁명운동에 가담했다. 한 시간 남짓한 방송이 끝나자 철저한 성분 조사를 거쳐 엄선된 홍위대 공작대원들이 우리들에게 위대한 사회주의 문화혁명의 대열에 전체 학생들이 참가하기 위해 휴교를 명한다고 발표했다.

 

● 교장보다 서열 높은 공작대장

우리 학교의 공작대장은 복건성 체육회 회장이었으며 교장보다 서열이 높았다. 공작대는 공식상 정치적 지위가 없는 30여 명으로 구성돼있었으며 이들 공작대는 1964년부터 우리 학교에 설치돼 절대적인 힘을 행사하고 있었다.

 

오전 11시 우리들은 일단 귀가했다가 오호 2시 당지부와 공작대에 제출하는 투쟁대열 참가서약서를 쓰기 위해 교실에 다시 모였다. 오후 5시 우리들은 다시 교정에 모였고, 각 학급 반장들이 우리가 쓴 서약서를 큰 소리로 읽었다. 오후 7시까지 두 시간 가까이 끈 이 모임에 선생들이 한 사람도 참가하지 않는 것을 보고 우리들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나는 급우 집에서 몇 동료들과 어울려 밤늦도록 과일을 씹으며 우리들의 학습과 앞으로 닥쳐올 사태에 관해 이야기했다. 대체로 우리들은 앞으로 몇 주 동안은 수업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다소 마음이 풀리고 기분이 좋긴 했으나 다가올 대학입시가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

 

● 수업시간 늦는 것도 스승 죄상(罪狀)

나는 그날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 어찌나 무덥던지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며칠 내에 내가 해내야 할 숙제를 생각해보았다. 골치가 아팠다.

 

공작대는 우리들에게 한 사람이 선생들의 비위사실 이른바 오십조죄상(五十條罪狀)을 들춰내어 그것을 열 장의 포스터에 그려오라고 했다. 선생들의 비위사실이란 수업시간에 늦게 들어온다거나 학생들을 벌준다거나 하는 사소한 일에서부터 당에 대한 불평이나 공격 등 심각한 반동 행위에 이르기까지 무엇이건 좋다고 했다. 많이 들춰낼수록 좋다는 것이다.

 

그림 형식에는 제한이 없다고 했다. 벽 포스터도 좋고 만화나 슬로건을 만들어도 좋다는 것이다. 없는 것을 억지로 꾸며 많이 만들어내라는 이야기였다.

 

만약 어느 선생이 “생활이 어렵다”든지 “식량이 부족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면 이는 반 공산주의자나 반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규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민하다 못해 나는 내가 항상 존경하는 국어교사 양신영 선생 집으로 조언을 빌러 찾아갔다. 그는 나에게 1957년 봄 많은 지식인들이 그들의 비평은 언젠가 받아들여질 날이 있을 것이라고 천진하게 믿으면서 마음을 쏟아놓다 처참한 변을 당했던 정풍운동(整風運動)을 회상시키면서 나에게 말했다. “입을 다물고 있어 그 편이 되려 안전할 테니까.”

 

그러나 학생들은 포스터 그리기에 분주했고 선생들을 데려다 그려놓은 포스터를 읽게 했다. 포스터를 읽은 선생들은 자기의 반동 행위에 대해 학생들에게 추궁을 받았다. 선생들의 대부분은 “이점을 시인합니다. 비판을 달게 받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몇몇 선생들은 포스터를 흘끔 보고는 등을 돌리고 가버리기도 했다. 이경우 그를 공박하는 포스터의 수는 늘게 마련이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은 사소한 일만을 갖고 포스터를 그렸고 포스터에 사인도 집단적으로 했다.

▲ 문화혁명의 진전을 알리는 벽보가 나붙은 북경거리에 한 소년이 쪼그리고 앉아 최신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벽보에는 당의 지시사항과 함께 반혁명분자의 죄상이 적혀있다. 1967.01.26

● 대학 진학을 공작대가 좌우

학생들은 공작대를 두려워했고 특히나 대학 진학의 열쇠가 이들 수중에 쥐어져 있어 이들의 비위를 맞추기에 애를 썼다.

 

그런 한편, 학생들은 그들 선생들의 오해나 보복이라도 있을까 봐 마음을 졸였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은 그들 선생에게 개인적으로 편지를 내어 억지로 시키는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기도 했다. 평소 선생들의 속을 썩이던 몇몇 빈한한 학생들만이 과거 자기들에게 무관심했던 선생들을 골라 보복의 기회로 이용했을 따름이었다.

 

나는 내 동료들에게 선생님들 대개가 훌륭하고 혁명적이며 우리들이 그들을 모두 나쁘게 취급해선 안된다고 몇 차례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양 선생님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침묵을 지켰다. 대세를 좇기 위해 나는 내 급우들이 그려놓은 포스터에 사인을 했지만 늘 포스터 맨 끝자리에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갈겨쓰곤 했다.

 

이무렵 나 자신은 내부갈등 속에 휘말려 들어갔다. 교장선생님 이하 모든 선생님들은 나를 무척 아껴주었고 그분들의 총애 속에 나는 행복한 학교생활을 해왔다. 내형과 누나도 이 학교에 다니면서 많은 상을 탔다. 선생님들 모두가 나를 잘 알고 있었으며 우리 가정과 학교와의 관계도 퍽이나 가까웠다.

 

▲ 모택동을 찬양하며 쑹화강을 건너는 홍위병들

● 눈치 보며 사는 기회주의자로

내가 교장선생님과 여러 선생님들을 배반한다면 이는 배은망덕이요. 내양심에도 역행하는 짓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의 가정에서도 내 행동을 용납치 않을 것이다.

 

이제까지 주위 사람들의 총애를 받아온 내가 배반을 함으로써 공작대가 행세하는 판국에 또다시 총아로 등장한다면 내 동료들은 시기한 나머지 나를 미워하게 될 것이고 나는 결국 주위 환경에 따라 처신을 달리하는 기회주의자가 되고 말 것이다.

 

나는 이러한 유형의 인간을 늘 증오해왔으나 지금의 내 자신이 바로 그런 처지에 놓여있음을 깨달았다. 이와 반면에 나는 대학에 가려면 정치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하고 그것은 내 양심을 무시함으로써만이 얻을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는 이 모든 갈등 속에서 헤어 나오고 싶었다. 그래서 한 번은 몸이 아픈 체 꾸며볼까도 생각해봤다. 심지어는 가족 가운데 누가 죽기라도 하는 불상사가 우리 집에서 일어나기를 바라기까지 했다. 그 지긋지긋한 포스터 그리는 일에서 내가 손을 뗄 수 있는 구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이 몇 며칠이 어서 지나갔으면 싶었고 또 실제로 빨리 지나갔다.

 

● 포스터 서명 갈겨써도 생트집

8일째로 접어든 저녁 공작대에서 나에게 호출이 왔다. 공작대장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문화혁명은 대양의 거센 파도와 같은 대중운동이야. 그런데 자네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저는 당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대중운동의 조류에 따라갈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대답은 오랫동안 외우다시피 입에 익은 말들이었다.

 

그러자 대장은 “몇몇 보고서에 의하면 자네 태도는 상당히 트릿하단 말이야. 예를 들자면 모든 학생들은 포스터를 그리기로 돼있는데 자넨 이제껏 한 장도 그리지 않았단 말이야.”

 

“저는 쭉 다른 동료들과 그려왔습니다.”

“아냐. 자네가 포스터에 알아볼 수 없게 갈겨 서명한 것을 보더라도 자넨 필시 침묵의 반항 아니면 모종의 심각한 무엇을 품고 있단 말이야. 그뿐 아니라 자넨 교장과 이곳 옛 당지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어. 그들은 자네를 수정주의적 방법으로 교육시켰어. 자넨 문화혁명의 새물결을 피하려 들고 있단 말이야.”

 

그는 나의 학교 성적을 알고 있었다. 나는 4년 동안 줄곧 수석을 차지해왔다. 그러나 나는 내가 중산계급 태생이란 이유 때문에 그때까지도 공산당 청년동맹에 가입할 수가 없었다. 나는 사물을 정반의 양면에서 관찰하는 변증법적 방식을 들먹이면서 그에게 말했다.

 

“저는 ‘하나’는 반드시 ‘둘’로 쪼개진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네가 버려야 할 보수적인 사상이란 말이야. 교장 밑에 있던 녀석들은 모두 반동으로 드러났어.”

 

“제 자신이 앞으로 고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넨 뭔가를 저주하거나 겁내고 있지.”

 

“아닙니다.”

“그럼 됐어. 돌아가서 잘 생각해봐.”

 

● 학생회 없애고 혁명 위원 상주

그는 나의 머리를 가볍게 두 번 두들겨 주었다. 나는 마치 쇠뭉치에 머리를 부딪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6월 12일 아침, 중공 정치국의 명령에 따라 공작대는 정식으로 학교로부터 철수했다. 그러나 공작대는 30, 40명으로 된 종래의 학생회를 없애고, 12명으로 구성된 혁명준비위원회를 설치했다. 한 공작대원은 혁명위의 위원으로 그대로 학교에 남았다. 청년동맹서기인 한 교원도 학생을 위원장으로 한 이 위원회의 한 위원으로 그대로 남았다.

 

예상한 바였지만 나는 내 클래스의 리더였고 학생회 부회장이었는데도 위원으로 뽑히지 않았다. 나는 그 공작대에 대해 심한 분노를 느꼈다. 공작대는 학생들 스스로가 혁명을 추진할 수 있게 하자는 의도에서 철수한 것이다.

 

6월 12일 아침 9시 공작대는 혁명준비위원회에 대해 요 감시인(要監視人)의 명단을 넘겼고 혁명위는 교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그 명단을 공개했다. 한 교사는 국민당의 당원이었다는 이유로, 다른 한 사람은 2차 대전 때 국민청년단에 관련됐다는 이유로 고발당했다.

 

“이젠 너희들 차례다. 너희들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어디 보자.”라고 공작대는 말했다.

 

이 같은 선동 방법으로 학생들은 그들 계급이 적인 교사들에 대한 생사결단의 계급투쟁에서 폭력을 사용할 준비를 갖추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그렇게 일찍 다가올 줄은 미처 몰랐다.

 

6월 12일 낮 12시쯤 우리 몇몇이 수영을 한 후 교문에 가까이 왔을 때 비명과 고함소리들이 들렸고, 몇 명의 학우들이 우리를 향해 뛰어오면서 “투쟁이 시작됐다! 투쟁이 시작됐어!”라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나는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거기엔 4, 50명의 교사들이 줄지어 서있었는데 그들은 진짜 ‘시커먼 패(문화혁명 초기부터 지식인들을 비난하는데 쓰였던 말)’를 표방하기 위해 모두 머리와 얼굴에 온통 검정 물감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들의 목에 걸린 플래카드에는 ‘반동 학원책임자 누구누구’ ‘학급의 적 누구누구’ ‘부패한 음모자 누구누구’등 모두 신문에서 뽑아낸 어귀들이 씌어있었다.

 

● 플래카드마다 붉은 십자가

플래카드마다 붉은 십자가가 그려져 있어 교사들은 마치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죄수들처럼 보였다. 그들은 모두 비슷한 슬로건이 적힌 종이로 만든 원추형의 어릿광대 모자를 쓰고 있었고 더러운 빗자루, 구두, 먼지떨이 등을 등에 매고 있었다.

 

또 돌멩이로 가득 채워진 양동이들이 그들의 목과 어깨에 걸려 있었다. 그들은 깨어진 징이나 오지그릇을 두드리고 맨발로 운동장을 돌면서 ‘나는 검은 악한 아무개요‘라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끝으로 그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향을 태우며 모택동에게 과오를 용서해줄 것을 빌었다. 나는 이런 광경에 매우 놀라 얼굴에 핏기가 가시는 것을 느꼈다. 이런 광경에 거의 기절하다시피 하는 여학생들도 더러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보게 됐던 고문 광경을 그전에는 본일이 없었다. 인분이나 벌레를 먹인다든지, 전기고문을 하는 것, 깨진 유리조각 위에 무릎을 꿇리거나 팔과 다리를 묶어 달아 매 놓는 등 고문은 가지가지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