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일본 여자 수영선수를 짝사랑한 남자의 협박 소동
– 일본 수영선수 짝사랑한 20대, 국제 협박 소동
– “JAL기 폭파” 위협
김포공항 경찰대는 최근 평소 짝사랑해 온 일본 여자 수영선수 집에 전화를 걸어 자신을 만나주지 않으면 일본항공 소속 항공기를 폭파하겠다고 위협한 한모씨(25)를 즉심에 회부.
한씨는 지난달 24일 전 일본대표 수영선수인 나가사키 히로코 양의 일본 도쿄 집으로 전화를 걸어 “한국으로 와 나를 만나 주지 않으면 일본 항공 비행기를 폭파하겠다“라고 협박했다는 것.
경찰 조사 결과 한씨는 지난 86 아시안게임 때 히로코 양을 TV에서 처음 보고 짝사랑하게 돼 일본수영협회로부터 히로코 양의 집 전화를 알아낸 뒤 20여 차례나 국제전화를 걸어 사랑을 호소해 온 것으로 판명.
【경향신문 1993.07.04】
80년대 일본의 수영 아이돌, 나가사키 히로코
기사에 거론된 피해자 나가사키 히로코(長崎宏子)는 1968년 7월 27일생으로 80년대 평영 종목을 주름잡았던 천재수영소녀였다.
▲ 나가사키 히로코(長崎宏子)
초등학교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으며, 12세의 나이에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일본대표로 선발되는 기염을 토했지만 정치적인 문제로 자유진영의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이 결정되며 ‘일본 역사상 하계올림픽 최초의 초등학생 대표‘라는 기록은 무산되었다.
하지만 1984년 LA올림픽을 앞두고 벌어진 프레올림픽 평영 200m에서 마의 2분 30초 벽을 돌파한 2분 29초 91(당시 역대 4위 기록)을 달성, 일본인 최초의 우승을 거머쥐며 올림픽 메달의 꿈에 다가갔다. 특히 LA올림픽은 80년 대회와는 반대로 공산진영 선수들이 불참하여 내심 금메달도 노리는 중이었지만 연습 중 무릎 부상을 당하며 정작 올림픽 무대에서는 200m 평영에서 4위에 그쳤다.
▲ 현재 모습. 딸은 뮤지컬 배우지망생
이후 메달획득 실패 탓인지 매너리즘에 빠져 수영계를 떠나 미국의 일반 고등학교에 편입했는데, 유학 중 자신의 세계무대 활약(올림픽에 참가한 자체가)이 대단한 업적임을 친구들의 반응으로 깨닫고 귀국 후 88서울올림픽 선발전에 임했다.
▲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선발전에서는 공백기 탓인지 14세 중학생 니시오 요시(西岡由恵)에게 패했음에도 올림픽 참가경험을 인정받아 대표팀에 승선했지만 결과는 예선탈락이었다. 이후 1991년 6월 일본선수권에서 100m, 200m 각각 2위를 차지한 후 은퇴하였다.
▲ 올림픽 예선탈락 기사 【도쿄스포츠 1988.09.22】
86 아시안게임 라이벌의 엇갈린 운명
한편 기사 속의 1986년 아시안게임에서 나가사키 히로코는 평영 200m 금메달, 400m 계주 금메달을 차지하였지만, 평영 100m에서는 중국의 황샤오민(黃曉敏)에게 불과 0.01초 차로 뒤지며 아쉽게 금메달을 놓쳤다.
▲ 1986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모습. 오른쪽 한복차림은 한국대표 박성원
이 황샤오민도 87년 중국 10대 운동선수에 선정될 정도의 수영천재로, 88서울올림픽 평영 200m 은메달을 획득하는 등 아시아를 넘어선 월드클래스 평영선수였다.
이후 한국에 유학 왔다가 중국체육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 남성과 결혼하며 귀화하였다.
▲ 나가사키 히로코 | 황샤오민
같은 대회에서 뛴 일본과 중국의 수영 아이돌이 한 명은 한국 남자의 스토킹 피해자로, 다른 한 명은 당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 남자와 결혼하는 등 악연과 인연이 엇갈리는 무대가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