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대청동의 적산가옥, 카시이 겐타로(香椎源太郞) 저택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에 위치한 부산근대역사관(대청동2가 대청로 104)에서 길 건너편으로 보이는 복병산길로 들어가서 복병산길7번길 혹은 복병산길3번길로 진입하면 가림막으로 가려진 공터가 있다. (오피스텔 ‘대동레미안더휴’ 맞은편)
▲ 잡초만 무성한 공터
상태로 보면 아마도 곧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거나 주차장으로 쓰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과거 이곳에는 근대 부산의 갑부가 살던 오래된 저택이 있었다.
▲ 과거 적산가옥이 있던 공터 위치(부산 중구 대청동2가 4-8)
근대 부산의 재벌, 카시이 겐타로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커져가던 1905년, 카시이 겐타로(香椎源太郞)라는 후쿠오카 출신의 일본인 사업가가 부산에 상륙한다.
▲ 카시이 겐타로(香椎源太郞, 1867~1946)
그는 의친왕 이강(義親王 李堈, 1877~1955)이 소유하고 있던 진해의 어장을 임대받아 수산업자로 대성공을 거두었고, 1920년대에 이르러서는 부산뿐만 아니라 조선 전체에서 손꼽히는 갑부가 되었다.
▲ 1936년 12월, 부산 본정(현재 중구 동광동)에 세워진 카시이 겐타로 동상. 부산 동주여자중학교와 동주여자고등학교를 설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躍進朝鮮大觀』(帝國大觀社, 1938) ⓒ서울역사박물관
이 시기에 지은 것이 바로 ‘카시이 겐타로 저택‘이다.
▲ 철거 전 카시이 겐타로 저택의 모습
공터의 위치는 크고 작은 건물들 사이에 갇혀있어서 ‘왜 이런 곳에 저택을 지었을까‘라는 의구심도 들지만, 100년 전 이곳은 복병산(伏兵山)의 기슭에 위치해 입지도 좋고 용두산과 해안이 보이는 전망 좋은 풍경을 마주하고 있었을 것이다.
▲ 복병산 기슭 저택의 위치(붉은 원)
또한 저택을 주변과 경계짓는 높은 콘크리트 담과 좁은 골목길, 주변 건물은 6.25 전쟁 이후 생겨난 것. 모두 일제시대에는 정원의 일부에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이 근처를 지나다 보면 카시이 겐타로의 저택은 마치 길가에 위치한 큰 공원과도 같은 느낌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2017년, 상공에서 본 카시이 겐타로 저택. 노란색 부분만으로도 큰 규모지만 일제시대에는 최소 빨간색 크기의 규모였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100년 전 조선 제일의 부자 중 한 명이 지은 건물이라 최고의 건축자재가 사용되었을 것이므로 누군가 계속 거주하면서 관리를 잘했다면 지금도 다른 적산가옥들 이상으로 멀쩡했을 것이다.
▲ 잡초와 쓰레기가 버려진 정원과 다른 방향에서 본 지붕
하지만 전쟁 중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몰려들어 주거구역이 복잡해지면서, 현재는 당시의 탁 트인 입지와는 달리 신축빌딩들과 좁은 도로에 포위당한 형태로 달라지는 통에 다른 용도의 건물로도 전환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 대문만 남아있는 현재의 모습. 아래의 석축외에 담, 대문, 계단 모두 해방 이후 만들어진 것이다.
1945년 8월, 일제의 패망과 함께 모든 재산을 압류당하고 귀국해야 했던 카시이 겐타로는 불과 반년 후인 1946년 3월 별세했고,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던 저택도 방치되며 빛을 잃어가다가 2020년경 철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