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이야기 (68) 1934년, 나치 경례를 거부한 영국 골키퍼의 용기
1934년, 독일 축구팀과의 프리시즌 투어 중 잉글랜드 더비 카운티(Derby County FC)의 선수들이 독일국가 연주 중 ‘나치 경례‘를 하는 가운데 골키퍼 잭 커비(Jack Kirby)만이 이를 거부하고 있다.
더비 카운티의 흑역사, 독일 프리시즌 투어
유럽 각국의 축구 시즌이 끝날 무렵, 독일축구협회는 자국의 우수성을 과시할 친선경기를 계획하고 있었다.
마침 잉글랜드 풋볼리그(EPL 전신)의 ‘더비 카운티‘가 포착되었다. 1933-34시즌을 4위로 마치며 강팀으로 자리매김한 데다가 새미 크룩스(Sammy Crooks), 톰 쿠퍼(Tom Cooper), 에릭 킨(Eric Keen), 잭 바워스(Jack Bowers)와 같은 잉글랜드 국가대표 선수들이 포진한 이 팀은 계획에 안성맞춤이었다.
▲ 더비 카운티 엠블럼
독일 축구협회의 제안을 받아들인 더비 카운티는 여객선을 타고 나치 정권이 세워진 국가에 입성했다.
선수들은 가는 곳마다 하켄크로이츠(Hakenkreuz)가 펄럭이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하면 독일인들로부터는 “하일, 히틀러!(Heil Hitler!)”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 “독일의 인사법: 하일, 히틀러!”
더비 카운티는 독일 프로팀들과 총 4경기를 치렀는데, 홈경기였던 만큼 독일은 강력한 조직력을 자랑했다. 쾰른을 상대로 0-5, 프랑크푸르트에게 2-5로 패배하며 망신을 당했고 뒤셀도르프와는 0-1, 마지막 도르트문트와 겨우 1-1로 비기며 전패를 면했다.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홈구장 ‘슈타디온 로트 에어데(Stadion Rote Erde)’에 입장하는 더비 카운티
비록 경기는 변명의 여지없이 패배했으나 최고급 호텔과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진 곳에서의 프리시즌 투어는 최고의 경험이었다. 다만 지금까지 회자되는 것이 바로 처음에 나온 사진의 순간이다.
당시 더비 카운티의 선수들에게 경기 개시 전 ‘나치 경례(Hitlergruß, 히틀러그루스)를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투어에 참가했던 조지 콜린(George Collin)의 회고에 따르면, 선수들은 “우리는 나치 경례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조지 조비(George Jobey, 1885~1962)감독에게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 나치 경례를 거부하는 한 선수
이에 조비 감독은 구단 고위층에게 선수들의 의사를 전달했지만, 영국 대사가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려면 반드시 해야 한다‘라고 관철했다. 당시 민감한 국제관계 속에서 모든 독일국민이 떠받드는 명예로운 의식을 거부한다면 이는 초청국에 대한 모욕이 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하지만 골키퍼 잭 커비만은 예외였다. 그는 “나는 나치 경례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고, 실제로 경례를 해야하는 순간이 오자 팔을 내렸다. 심지어 ‘아마도 그를 노려보고 있었을’ 영국과 독일 측 고위인사들로부터 등까지 돌려버렸다. 경기장의 광적인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용기였다.
▲ 잭 커비(Jack Kirby, 1910~1960)
그로부터 5년 후인 1939년 9월 2일. 잉글랜드 풋볼리그 1939-40시즌의 2라운드에서 더비 카운티가 애스턴 빌라를 1-0으로 제압했다.
평소라면 승리에 도취된 팬들의 목소리로 떠들썩했겠지만 버스와 지하철의 분위기는 무겁게 내려앉아있었다. 사람들은 실수한 패스와 골 결정력에 대한 성토보다는 전날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5년 전 잭 커비가 나치에 대해 용감한 저항을 했던 순간이 되살아났다.
▲ 1938년 5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이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친선경기에서 나치경례를 하고 있다.
괜한 갈등으로 평화가 깨지지 않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의 판단은 어긋나고 있었고, 결국 다음날 영국이 독일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면서 풋볼리그(EPL 전신)는 7년간 중단되었다.
1934년의 프리시즌 투어에 참가했던 더비 카운티의 주장 톰 쿠퍼(Tom Cooper)도 전쟁이 발발하자 헌병대에 입대했고, 1940년 6월에 전선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