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보스토크 2호 발사 성공 소식을 보는 사람들
보스토크 2호는 소련의 유인우주선 계획인 보스토크 계획의 두 번째 임무를 갖고 발사되었다.
세계 최초의 우주인으로 기록되어있는 유리 가가린(Yuri Gagarin, 1934~1968)의 거대한 존재감에 가려져있지만, 보스토크 2호의 우주비행사인 게르만 티토프(Gherman Titov, 1935~2000) 역시 초창기 우주 도전인 만큼 여러 ‘세계 최초‘기록을 가지고 있다.
아래 사진은 1961년 8월 6일, 소련의 위성국이었던 헝가리 인민공화국 주민들이 보스토크 2호의 성공을 알리는 신문을 보며 기뻐하는 모습이다.
▲ 신문을 보는 헝가리 국민들 ©Tormai Andor
우선 발사 당시 26세로 세계에서 가장 어린 우주비행사였으며, 25시간 18분 동안 지구궤도를 17회 공전하면서 ‘1일 이상 우주에 있었던 최초의 인류‘로 기록되어있다.
또한 보스토크 1호는 완전 자동운전모드였지만 그는 보스토크 2호를 수동 제어하면서 최초로 우주선을 조종한 기록도 남겼다. 우주에서 신체의 정상 활동이 가능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7시간 동안 수면을 취하면서 ‘무중력 상태에서 처음으로 잠을 잔 인류‘ 기록도 남겼다. 더불어 이 과정에서 우주멀미로 인한 최초의 우주 구토라는 기록도 얻어졌다.
▲ 티토프와 가가린
게르만 티토프에 앞서 보스토크 1호로 우주공간에 올라갔던 유리 가가린은 그가 본 지구를 입으로 묘사하고 테이프에 녹음하였다.
“아주 잘 보인다. 지형이나 숲이 명확하게 보이고 지구 위의 구름, 작은 적운과 그림자를 보고 있다. 아름답고, 아름답다”
하지만 백 마디 단어보다 눈으로 보는 이미지 한 장의 가치가 더 크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소련은 게르만 티토프에게 Konvas-Avtomat 카메라를 들려 보냈고 이때 찍은 영상은 그를 지구를 촬영한 최초의 인류로도 남게 했다.
▲ 당시의 Konvas-Avtomat 카메라
티토프는 1962년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박람회(Century 21 Exposition)에도 참여하였는데, 이때 “사람들은 신이 저 위에 있다고 말하지만 내가 가서 하루 종일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천사도 신도 그 무엇도 보지 못했소.”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 신은 없다!(Бога Нет)
이 발언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말을 앞세워 종교를 사회악으로 보는 소련 공산당의 구미에 딱 맞았던 관계로 반종교 선전도구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특히 유리 가가린이 남겼던 말로 회자되었지만 실은 게르만 티토프가 한 말이었다.
게르만 티토프는 이후에도 소련의 우주계획에 테스트 조종사로 참여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였지만 1968년 유리 가가린이 항공기 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현역에서 은퇴했다. 소련 정부가 체제 선전에 요긴한 우주영웅을 더 이상 잃을 수 없다는 판단하에 그를 위험한 직책에서 내보낸 것이다.
▲ 달 뒷면의 Titov 분화구
소련은 보스토크 계획에서 게르만 티토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달의 뒷면에 있는 분화구에 그의 이름 ‘티토프(Titov)’를 명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