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의 만우절 거짓말, 알래스카 화산 분화
알래스카 휴화산의 분화
1974년 4월 1일 월요일 아침, 알래스카 시트카(Sitka) 근처의 엣지쿰베 산(Mount Edgecumbe, 976m)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랜 휴식을 끝낸 휴화산 엣지쿰베가 분화를 시작한 것.
그날은 유난히 화창한 날이라 이 무시무시한 광경은 멀리서도 눈에 띄었고, 패닉에 빠진 시트카 주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 길가던 시트카 주민이 집으로 달려가 카메라로 찍은 화산 분화 ⓒHarold Wahlman
지방당국으로 전화 문의가 쇄도하자 주노(Juneau)의 해안경비대 사령관은 해군 제독에게 보고했고, 제독은 즉각 ‘헬기를 보내 분화구를 조사하라‘고 명령했다.
엣지쿰베 산에 조심스레 접근한 헬기 조종사는 분화구 안쪽을 살펴보는 순간 긴장을 풀고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화산의 분화구에는 용암 대신 불붙은 타이어 더미와 그 옆의 눈에는 15m 크기의 글자가 스프레이로 적혀있었다.
“APRIL FOOL’S”
알래스카가 배출한 최고의 장난꾸러기
시트카에서 벌목장비 상점을 운영하던 올리버 ‘포키’ 비카르(Oliver ‘Porky’ Bickar)는 오래전부터 짓궂은 장난을 치는 것으로 지역 내에서는 유명한 인물이었다.
1971년, 그는 ‘만우절 장난으로 엣지쿰베 산 분화구에 불을 붙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된다. 하지만 4월 1일이 되면 항상 날씨가 흐렸기에 다음 해로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1974년 4월 1일, 창문 밖으로 화창한 날씨가 펼쳐지자 ‘계획‘을 실행하기로 결심했다.
▲ 올리버 ‘포키’ 비카르(Oliver ‘Porky’ Bickar, 1923~2003)
포키는 상점으로 출근하기 전 아내 패트리샤에게 “됐어 오늘이 바로 그날이야“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했고, 아내는 장난의 명수인 그가 만우절 장난으로 뭔가를 꾸민다는 것을 눈치채고 “당신 바보짓하지 말아요“라는 당부를 했다.
그는 상점으로 신나게 달려가 전세 헬기를 수소문했다. 헬기를 어디에 쓸 것인지를 들은 후 조종사들이 핑계를 대며 서비스 제공을 거부했는데, 다행히 세 번째 전화한 헬기 조종사가 포키의 계획에 공감하며 아침 안개가 걷히면 바로 가겠다고 약속했다.
▲ 포키의 묘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참전한 겁날게 없는 인물이었다.
헬기가 오는 동안 포키는 이날을 위해 격납고에 모아 두었던 50개의 타이어를 밧줄에 매달았고, 불쏘시개로 쓸 담요와 1갤런의 알코올, 디젤유, 검은 연기를 내뿜는 연막탄 12개를 준비했다.
평소 마음이 맞던 친구 3명과 함께 헬기에 탑승한 포키는 분화구에 도착하자마자 타이어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눈 옆에 스프레이로 ‘APRIL FOOL’S(만우절)’를 쓴 다음 차곡차곡 쌓은 타이어에 불을 붙이고 자신들의 작품(?)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알래스카의 자랑
엄청난 장난이지만 사실 포키는 선은 지켰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미국 연방항공국(FAA) 감독관에게 계획을 미리 알렸고,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받은 무전에서는 FAA 관제사가 “이 계획은 승인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나저나 환상적이네요!“라는 감탄을 하기도 했다고.
또한 시트카의 경찰서에도 만우절 장난임을 미리 알렸지만 어쩐 일인지 해안경비대는 깜빡한 것. 그로 인해 해안경비대가 분화구 조사를 위해 헬기를 급파하는 소동이 발생한 것이었다.
▲ 1966년 경향신문 만우절 만평. 스케일은 만만치 않았다.
원래 시트카 주민들만을 놀라게 하려던 포키의 계획은 예상보다 커졌고, AP통신까지 사건을 보도하는 통에 해외토픽이 되어버렸다.
이 거대한 만우절 장난은 당시 알래스카 항공(Alaska Airlines) 부사장 지미 존슨(Jimmy Johnson)의 귀에도 들어갔다.
▲ 엣지쿰베 산과 알래스카 항공 여객기
그는 당일 시트카를 출발하는 여객기가 엣지쿰베 산 상공으로 비행하도록 지시했고, 분화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보고 싶어하는 승객들에게 앞줄 좌석을 제공하였다.
심지어 이듬해에도 알래스카 항공은 이 만우절 장난을 광고에 사용하면서 홍보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 1975년 알래스카 항공 신문광고
장난의 주요 대상이었던 시트카 주민들 역시 잠깐 동요한 것 외에는 실제로 화산이 터지지 않았기 때문에 웃어 넘겼고, 고립된 지형으로 인해 무뚝뚝할 거라는 알래스카인들의 이미지를 뒤엎는 유쾌한 괴짜가 나왔다며 포키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했다.
▲ 시트카 역사박물관의 전시품. 화산연기에 porky’s라는 글자가 보인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흘렀고 포키는 2003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이 해프닝은 역대 최고의 만우절 장난 중 하나로 여전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