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이야기 (86) 1968년, 폴란드 바르샤바의 여름 소나기 풍경

1968년 7월, 폴란드의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자이자 사진작가인 즈비스코 시마즈코(Zbyszko Siemaszko, 1925~2015)는 풀라브스카 거리(Puławska Street)에서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소나기 속을 맨발로 뛰는 소녀를 포착했다. 훗날 이 장면은 그가 찍은 수많은 사진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되었다.

 

사진은 의도치 않은 우연들이 겹쳐진 찰나의 순간들을 완벽하게 포착하고 있다.

 

1968년 7월, 폴란드의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자이자 사진작가인 즈비스코 시마즈코(Zbyszko Siemaszko, 1925~2015)는 풀라브스카 거리(Puławska Street)에서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소나기 속을 맨발로 뛰는 소녀를 포착했다. 훗날 이 장면은 그가 찍은 수많은 사진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되었다. 1
▲ 소나기 내리는 바르샤바 거리와 달리는 소녀 | Zbyszko Siemaszko

 

바르샤바 223(FSO Warszawa 223) 택시가 왜인지 문을 열어놓은 채로 내달리고, 마주오는 아주머니는 당시 유행하던 나일론 코트를 입고 있다. 몇몇 우산을 꺼내 드는 준비성 있는 사람들도 보이지만 갑자기 내리는 비에 대부분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폴란드에서는 유명한 사진이지만 사진 속의 인물들, 특히 뒷모습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그동안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사진이 게시된 온라인 포럼에서 한 여성이 52년 만에 사진을 보고 글을 남겼다.

 

그라치나(Grażyna)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내가 사진 속의 소녀’라고 주장했다. 물론 누구나 다 그렇게 주장은 할 수 있지만 그녀는 그날의 바르샤바에서 있었던 일상에 대해 너무나 자세하게 설명을 할 수 있었다.

 

1968년 7월, 폴란드의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자이자 사진작가인 즈비스코 시마즈코(Zbyszko Siemaszko, 1925~2015)는 풀라브스카 거리(Puławska Street)에서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소나기 속을 맨발로 뛰는 소녀를 포착했다. 훗날 이 장면은 그가 찍은 수많은 사진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되었다. 3
▲ 색을 입힌 사진

 

1968년의 그라치나 여사는 바르샤바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오호타(Ochota)에 거주하는 13세의 초등학생이었다. 문제의 그날, 직장에 있던 아버지가 선물 받은 딸기를 딸에게 연락해 집으로 가져가게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모스크바 극장 앞에서 아버지에게 딸기를 받아오는 심부름을 하는 대신 아이스크림을 사준다는 약속을 받아낸 그라치나는 시간 넉넉하게 집에서 나와 노면전차를 타고 가던 중 상점의 쇼윈도를 구경하고 싶어서 한 정거장 앞인 모코토프(Mokotów)에서 하차했다.

 

1968년 7월, 폴란드의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자이자 사진작가인 즈비스코 시마즈코(Zbyszko Siemaszko, 1925~2015)는 풀라브스카 거리(Puławska Street)에서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소나기 속을 맨발로 뛰는 소녀를 포착했다. 훗날 이 장면은 그가 찍은 수많은 사진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되었다. 5
▲ 바르샤바 최초의 셀프 슈퍼마켓(1967년) | Grażyna Rutkowska

 

당시 모코토프에는 바르샤바 최초의 셀프서비스 슈퍼마켓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무슨 일인지 긴 줄이 늘어서 있었는데, 그라치나도 무슨 줄인지 궁금해서 서있다가 줄이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갔고, 결국 아버지와의 약속시간에 늦을까 봐 가게를 뛰쳐나오게 된다.

 

1968년 7월, 폴란드의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자이자 사진작가인 즈비스코 시마즈코(Zbyszko Siemaszko, 1925~2015)는 풀라브스카 거리(Puławska Street)에서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소나기 속을 맨발로 뛰는 소녀를 포착했다. 훗날 이 장면은 그가 찍은 수많은 사진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되었다. 7
▲ 남쪽에서 본 슈퍼마켓. 1층에 패스트푸드 매장 ‘Frykas’가 있다. | Zbyszko Siemaszko

 

슈퍼마켓과 약속 장소인 극장과의 거리는 약 350m. 그 순간 갑자기 하늘이 검은색으로 변하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폴란드 기상연구소에 따르면, 1968년 7월 바르샤바의 강우량은 많지는 않았지만 자주 내렸던 걸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13세 소녀답게 일기예보를 무시한 그라치나는 우산을 휴대하지 않았고,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라 아버지에게 늦을 거라는 말을 전할 수도 없었기에 무조건 약속 장소까지는 가야만 했다.

 

첨벙거리는 물 위로 샌들을 신고 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라치나는 신발을 벗어 손에 쥐고, 딸기를 담을 가방을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얘야 들어와!”

 

그라치나는 당시에는 누가 누구를 향해 외치는 건지 정신이 없어 그냥 달려갔지만 사진 속 택시의 문이 열려있는 것으로 봐서는 아마도 타고 있던 손님이 그녀에게 호의를 베풀려고 한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든 그라치나는 목소리를 듣지 못했고, 들었다 해도 택시를 탈 상황도 아니었다.

 

1968년 7월, 폴란드의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자이자 사진작가인 즈비스코 시마즈코(Zbyszko Siemaszko, 1925~2015)는 풀라브스카 거리(Puławska Street)에서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소나기 속을 맨발로 뛰는 소녀를 포착했다. 훗날 이 장면은 그가 찍은 수많은 사진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되었다. 9
▲ 바르샤바에 내린 호우 | Zbyszko Siemaszko

 

그라치나가 극장 앞 횡단보도에 섰을 때는 비는 어느새 그쳐있었다.

 

1968년 7월 바르샤바의 월간 강수량은 51.3mm로 매우 건조한 달이었으나 비는 잠깐씩 자주 내렸다. 다음 달인 1968년 8월의 강수량은 불과 3.8mm로 이는 1951~2019년 사이 가장 강수량이 적은 달로 역사에 남아있다.

 

건조한 나날 속에서 예상치 못한 폭우가 내리면서 생동감 넘치는 작품이 만들어진 셈이다.

 

1968년 7월, 폴란드의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자이자 사진작가인 즈비스코 시마즈코(Zbyszko Siemaszko, 1925~2015)는 풀라브스카 거리(Puławska Street)에서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소나기 속을 맨발로 뛰는 소녀를 포착했다. 훗날 이 장면은 그가 찍은 수많은 사진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되었다. 11
▲ 바르샤바의 모스크바 극장 | Zbyszko Siemaszko

 

그녀가 아버지와 만나기로 한 모스크바(Moskwa) 영화관은 폴란드 인민공화국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우아한 영화관이었다. 건물 정문에는 돌로 만든 사자조각이 양옆으로 서있었고 최대 1,2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곳으로 엄청나게 붐비는 핫플레이스였다. 1996년 철거되어 현재는 멀티플렉스 극장이 들어섰다.

 

그라치나의 아버지는 극장 앞에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딸기를 받아 가방에 담고, 아버지가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라고 주는 돈을 받아 지엘로나 부드카(Zielona Budka) 매장에서 바나나와 딸기 아이스크림을 샀다.

 

그녀의 옷은 비에 완전히 젖어있었고, 슈퍼마켓과 아이스크림 매장에서 연이어 줄을 서는 통에 그날은 완전히 기가 질려버렸다고 한다. 덕분에 잊지 못할 기억이 되어버린 것이다.

 

1968년 7월, 폴란드의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자이자 사진작가인 즈비스코 시마즈코(Zbyszko Siemaszko, 1925~2015)는 풀라브스카 거리(Puławska Street)에서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소나기 속을 맨발로 뛰는 소녀를 포착했다. 훗날 이 장면은 그가 찍은 수많은 사진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되었다. 13
▲ 풀라브스카 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Zielona Budka 매장 | Grażyna Rutkowska

 

52년 만에 비 오는 거리를 달리던 소녀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도로를 달리던 바르샤바 223 택시도 기적처럼 등장했다. 차의 소유주가 자신의 차 사진을 SNS에 업로드한 것이었다.

 

클래식 차량 마니아인 그는 2017년 폴란드 서남부 실레시아에서 이 차량을 구입했고, 트렁크 안에 보관되어 있던 옛 번호판을 다시 장착했다. 긴 세월 동안 소유주가 여러 번 바뀌고 도색도 수차례 달라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대시보드에 원래의 도색이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에 최초 색상을 복원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1968년 7월, 폴란드의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자이자 사진작가인 즈비스코 시마즈코(Zbyszko Siemaszko, 1925~2015)는 풀라브스카 거리(Puławska Street)에서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소나기 속을 맨발로 뛰는 소녀를 포착했다. 훗날 이 장면은 그가 찍은 수많은 사진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되었다. 15
▲ 당시의 차량이 완벽하게 복원된 모습

 

여기에 더해 작가의 손자 필립 시마즈코(Filip Siemaszko)도 현재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 역시 할아버지의 사진들 중 이 사진을 가장 좋아하며, 그 어떤 건축물이나 유적보다 바르샤바 시민들이 생동감 넘치는 모습이 담기도록 촬영한 기법에 경의를 표한다고 한다.

 

마치 우연처럼 찍힌 사진이지만 즈비스코 시마즈코는 달리는 소녀가 공중에 떠 있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여러 번 셔터를 눌렀다고 하는데 이를 통해 작가의 안목과 인내심, 풍부한 경험을 엿볼 수 있다.

 

1968년 7월, 폴란드의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자이자 사진작가인 즈비스코 시마즈코(Zbyszko Siemaszko, 1925~2015)는 풀라브스카 거리(Puławska Street)에서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소나기 속을 맨발로 뛰는 소녀를 포착했다. 훗날 이 장면은 그가 찍은 수많은 사진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되었다. 17
▲ 사진작가 즈비스코 시마즈코

 

이제 이 이야기의 다음 프로젝트는 요즘의 트렌드인 ‘재현’이다. 오리지널 작가는 이미 사망했지만 고인의 손자가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만큼 서사는 충분하다.

 

필립 시마즈코는 그라치나 여사가 자신의 스튜디오를 방문할 용기를 내주길 희망하고 있다. 푸른색 바르샤바 223 차량의 소유주도 바르샤바에서 200km가량 떨어진 루블린 근처에 거주하지만 이 아련한 풍경의 재현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바르샤바로 차를 몰고 오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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