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간판 내린 ‘맥도날드 모스크바 1호점’

1990년 1월 31일, 여전히 공산주의 체제였던 소련 모스크바 푸쉬킨 광장(Pushkinskaya)에 맥도날드 1호점이 문을 열었다.

 

개장을 앞둔 매장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은 냉전시대 공고하던 소련의 체제붕괴를 알리는 서막과 동시에 ‘자본주의 승리‘의 상징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모습. (관련 글: 모스크바 맥도날드 개장일)

 

1990년 1월 31일, 여전히 공산주의 체제였던 소련 모스크바 푸쉬킨 광장(Pushkinskaya)에 맥도날드 1호점이 문을 열었다. 1
▲ 맥도날드 모스크바 1호점 개장일

 

그 시기 경제 침체상태의 러시아에서는 외식은 사치였기 때문에, 맥도날드가 ‘인생 첫 외식‘이었던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신세계에 입장한 러시아인들은 충격을 받았다. 맥도날드 매장에는 소련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청결함, 친절함이 있었고 넘쳐나는 일회용 플라스틱과 종이포장은 이들에게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모스크바 맥도날드 1호점의 임시 폐쇄


이후 30여 년을 넘게 러시아인들의 삶에 확고하게 자리 잡았던 맥도날드는 2022년에 생각지도 못한 위기를 맞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서방의 대 러시아 제재가 가해지자 글로벌 기업들이 이에 동참하면서 맥도날드도 3월 14일부터 850개 매장의 영업을 전격 중단한 것.

 

1990년 1월 31일, 여전히 공산주의 체제였던 소련 모스크바 푸쉬킨 광장(Pushkinskaya)에 맥도날드 1호점이 문을 열었다. 3
▲ 2020년 1월, 러시아 진출 30주년을 기념하는 인테리어


영업중단 소식이 전해지자 13일에는 각 지점으로 시민들이 몰려들며 마치 소련 시절 모스크바 1호점 개장 때의 모습을 재현하는듯 했다.

 

또 중고 물건을 되파는 사이트에는 맥도날드의 일회용 종이봉투를 비롯한 물품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대의 상품‘이라는 설명과 함께 비싼 가격으로 올라오는 등 영영 철수하는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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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1월 31일, 거울형 외관으로 변경한 맥도날드 모스크바 1호점


이에 대해 맥도날드 측은 “제재에 따라 영업을 중단하지만 종업원들에 대한 임금은 계속 지급될 것이며, 매장 임대료도 정상적으로 납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산주의 맹주의 벽을 넘은 상징성도 쉽게 포기하기 힘든 자산이지만, 완전히 발을 빼고 나면 다시 시장으로 뛰어들 때는 지금보다 더 높고 불리한 조건의 계약을 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간판이 내려진 맥도날드 1호점


하지만 생각보다 전쟁이 길어질 것이 예상되면서 우려했던 ‘맥도날드 완전 철수‘가 현실화될 수도 있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임시 폐쇄를 주장하던 모스크바 1호점의 간판과 m자 로고가 3월 24일(현지시각) 결국 내려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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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도날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건물.


맥도날드 폐쇄를 접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Dmitry Medvedev) 러시아 연방안전보장회의 부의장은 “더 좋은 질의 고기와 빵을 우리가 직접 생산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으며, 세르게이 소뱌닌(Sergei Sobyanin) 모스크바 시장도 “6개월에서 1년 안에 폐쇄된 맥도날드를 국내식당과 패스트푸드 업체가 대체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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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틴과 함께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좌)와 세르게이 소뱌닌(우)


하지만 이는 사업을 해본 적이 없는 정치인들의 허황된 이론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있다.

 

러시아 유명 푸드체인 쩨레목(Teremok, Теремок)의 설립자인 미하일 곤차로프(Mikhail Goncharov)는 “그 어느 곳도 러시아에서 맥도날드를 대체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동안 다른 업체들이 맥도날드의 아성을 넘보지 못한 것은 맛이나 가격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십 년간 축적된 맥도날드의 기술, 관리, 마케팅 노하우와 경쟁 자체가 되지 않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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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푸드체인 ‘쩨레목’

 

곤차로프는 “햄버거 하나만을 놓고 2~3개월 혹은 2~3년 만에 같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지하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또 “맥도날드처럼 착취하는 기업이 사라지면 더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제품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라며 정치인들과는 다른 현장의 기업인다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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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에서 사라진 m자 로고

 

실제로 맥도날드는 러시아에서 6만 2000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의 말과는 달리 재료의 99%를 러시아에서 조달하고 있기 때문에 현지 친화적인 기업으로 자리잡고 있는 상태이다. 또 규모가 작은 신생업체가 글로벌 대기업 수준으로 대량의 재료를 철저하게 관리하며 저렴한 제품으로 내놓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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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도날드 모스크바 1호점 옆에 등장한 푸드트럭.

 

현재 폐쇄된 맥도날드 1호점을 비롯한 각 매장 근처에는 마트료시카(Матрёшка, Matryoshka)인형 모양의 푸드트럭 16대가 등장해 영업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연 러시아가 공언한 그대로 단기간에 맥도날드의 흔적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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