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조선 여성들의 헤어스타일
매일신보 1918년 1월 1일 자에서는 새해를 맞아 현존하는 조선 여성들의 머리 모양에 대한 기사를 다루었다.
해당 기사를 쓴 기자는 조선 고유의 머리는 크게 ‘쪽’과 ‘틀어 얹는 것’ 두 종류로 분류된다고 말하고 있다.
▲ 1918년의 기생, 왕족, 무당, 여학생, 모던걸의 모습들이다. 【매일신보 1918.01.01】
우선 쪽에도 예장(禮裝)에 쓰는 큰낭자가 있고 틀어 얹는 데에도 큰머리가 있었으며, 궁중에서 사용하는 큰머리는 또 따로 있었다. 아이들이 쪽을 지어 땋아 늘이는 것까지 하면 쪽만 해도 여섯 가지로 세분화되었다.
▲ 20세기 초, ‘목제 큰머리’ ⓒ국립고궁박물관
조선 여성들은 평소에는 머리장식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예식 때면 가장 흔하게 쓰는 것이 족두리였다. 족두리는 민족두리, 칠보족두리(七寶簇頭里), 기생들이 주로 연주회에서 착용하는 화관(花冠)족두리 세 가지가 있었다.
족두리 외에는 ‘아얌‘이라는 방한모가 있었는데, 기사의 필자는 “보기 좋은 것인데 점점 사라져 가서 아쉽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아얌은 ‘조바위‘가 더 크게 유행하면서 그 기세에 밀려 사라졌다.
▲ 아얌(왼쪽)과 조바위(오른쪽)
하지만 아얌에 달린 장식들이 걸음으로 인해 떨리면서 이목을 집중시키는 모습은 오늘날 주변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아양을 떤다‘는 관용구로 남아서 전해지고 있다.
▲ 1914년 ‘예단일백인’에 등장한 기생들. 모두 아얌을 착용하고 있다.
한편 관서지방(평안남북도)에서는 틀어 얹은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이 결혼식의 머리 모양으로 정해져 있었으며, 경성(서울)에서는 신부가 폐백을 들일 때 특별하게 큰 머리를 썼다.
▲ 경성 결혼식에서 유행했던 큰머리 ⓒ국립민속박물관
필자는 이를 두고 “어수선하기 짝이 없고 크기도 한아름이나 되며 이로 인해 「머리하인」이라는 것까지 따라다니는 굉장한 것이다”라고 비꼬는데, 지금 봐도 그렇지만 당시 지식인의 눈에도 허례허식으로 보였는지 “어떤 연유로 생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조선의 전통적인 머리 모양이고, 이 시기 각 학교의 여학생들은 ‘속발(束髮, 트레머리)’ 헤어스타일이 일반적인 모습이었다고 한다.
▲ 왼쪽의 여성이 기사에서 예로 든 속발(트레머리)의 모습. 일본의 속발과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속발(트레머리)’이라고 하면 기생들의 머리가 떠오르지만 이때는 위 사진과 같이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하여 위로 짜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기생의 속발(트레머리)과 명칭은 같아도 모양에서 차이가 있었다.
▲ 흔히 떠오르는 기생의 ‘트레머리’
그밖에 땋은 머리를 뒤통수에 완전히 틀어붙이는 완전한 서양식 머리도 모던걸들에게 유행했으며 이는 오늘날 ‘번(bun)’이라 불리는 모양, 속칭 ‘똥머리‘의 형태로 보인다.
▲ 다양한 번(bun)의 형태 ⓒ유튜브 J-hair tv
또 한때 찜질방에서 대유행했던 ‘양머리‘처럼 머리 모양을 양쪽에서 땋아 귀 쪽에 붙이는 머리도 있었는데 이 또한 최신 서양식 헤어스타일이었다.
본문 첫 번째 사진 오른쪽 맨 아래에 등장한 헤어스타일인데, 해당 여성은 바로 ‘조선의 마타하리‘로 불렸던 밀정 배정자의 모습.
▲ 20대 무렵의 배정자
아무래도 밀정으로 여러 인사들과 어울리고 소문난 사치를 하던 유명인사였던 만큼 최신 유행하는 서양식 헤어스타일의 예로 들기에는 제격이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