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버트 하디가 촬영한 1950년 한국전쟁

수세에 몰리며 적화위기까지 갔던 한반도에서의 전황이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UN군의 반격 모드로 전환되자 영국 픽쳐 포스트(Picture Post)는 사진작가 버트 하디(Bert Hardy, 1913~1995)를 급파했다.

 

그는 최전선에 주로 머물며 영국군과 미군, 피난민들과 북한군 포로 등 전쟁터에서의 일상을 사진으로 남겼는데, 아래의 사진들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뒤인 1950년 9월 중순경의 모습들이다. 1
▲ 버트 하디의 젊은 시절과 노년

 

그는 최전선에 주로 머물며 영국군과 미군, 피난민들과 북한군 포로 등 전쟁터에서의 일상을 사진으로 남겼는데, 아래의 사진들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뒤인 1950년 9월 중순경의 모습들이다.

 

그는 최전선에 주로 머물며 영국군과 미군, 피난민들과 북한군 포로 등 전쟁터에서의 일상을 사진으로 남겼는데, 아래의 사진들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뒤인 1950년 9월 중순경의 모습들이다. 3
▲ 인천상륙작전 후 미국 군함들이 인천 해변에 정박한 모습.

그는 최전선에 주로 머물며 영국군과 미군, 피난민들과 북한군 포로 등 전쟁터에서의 일상을 사진으로 남겼는데, 아래의 사진들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뒤인 1950년 9월 중순경의 모습들이다. 5
▲ 미군이 인천지역을 점령한 후 마을 주민들이 밖으로 나오고 있다.

그는 최전선에 주로 머물며 영국군과 미군, 피난민들과 북한군 포로 등 전쟁터에서의 일상을 사진으로 남겼는데, 아래의 사진들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뒤인 1950년 9월 중순경의 모습들이다. 7
▲ 인천지역 주민들이 전투가 잦아든 후 밖으로 나오고 있다. 폭격지점 근처에 있었는지 노인의 몰골이 처참하다.

그는 최전선에 주로 머물며 영국군과 미군, 피난민들과 북한군 포로 등 전쟁터에서의 일상을 사진으로 남겼는데, 아래의 사진들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뒤인 1950년 9월 중순경의 모습들이다. 9
▲ 인천지역의 주민들이 공터에 모인 가운데 아기를 안고 있는 여성이 어딘가를 보고 있다.

그는 최전선에 주로 머물며 영국군과 미군, 피난민들과 북한군 포로 등 전쟁터에서의 일상을 사진으로 남겼는데, 아래의 사진들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뒤인 1950년 9월 중순경의 모습들이다. 11
▲ 대구에 형성된 최전방으로 이동 중인 영국 군인들.

 

그는 최전선에 주로 머물며 영국군과 미군, 피난민들과 북한군 포로 등 전쟁터에서의 일상을 사진으로 남겼는데, 아래의 사진들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뒤인 1950년 9월 중순경의 모습들이다. 13
▲ 영국 군인들이 미군트럭을 타고 최전방으로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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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가의 도랑에서 휴식을 취하는 미군 병사들.

그는 최전선에 주로 머물며 영국군과 미군, 피난민들과 북한군 포로 등 전쟁터에서의 일상을 사진으로 남겼는데, 아래의 사진들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뒤인 1950년 9월 중순경의 모습들이다. 17
▲ 브라우닝 기관총이 달린 지프에 탄 국군이 동네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뒤쪽 가게에는 ‘톱 고치는 집’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그는 최전선에 주로 머물며 영국군과 미군, 피난민들과 북한군 포로 등 전쟁터에서의 일상을 사진으로 남겼는데, 아래의 사진들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뒤인 1950년 9월 중순경의 모습들이다. 19
▲ 대구 어느 집안의 우물가에서 한 노파가 청년에게 물을 떠 주고 있다. 어쩌면 입대를 앞둔 아들이나 손자일지도 모른다. 당시 징집연령 대상은 입대를 하면 5일간의 훈련 후 전선으로 보내질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

 

그는 최전선에 주로 머물며 영국군과 미군, 피난민들과 북한군 포로 등 전쟁터에서의 일상을 사진으로 남겼는데, 아래의 사진들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뒤인 1950년 9월 중순경의 모습들이다. 21
▲ 영국 군인 두 명이 세탁물을 맡기고 있다. 한국인은 세탁을 해주고 돈 혹은 전투식량 같은 것을 대가로 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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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역으로 향하는 대한민국 기병연대.

 

그는 최전선에 주로 머물며 영국군과 미군, 피난민들과 북한군 포로 등 전쟁터에서의 일상을 사진으로 남겼는데, 아래의 사진들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뒤인 1950년 9월 중순경의 모습들이다. 25
▲ 대구 포로집결소에서 북한군 포로가 인적사항을 등록하고 있다. 이곳에 있는 포로들은 부산의 포로수용소로 이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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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군 헌병 경비대원이 북한군 포로 4명을 세워놓고 간단한 심문을 하고 있는 모습.

그는 최전선에 주로 머물며 영국군과 미군, 피난민들과 북한군 포로 등 전쟁터에서의 일상을 사진으로 남겼는데, 아래의 사진들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뒤인 1950년 9월 중순경의 모습들이다. 29
▲ 창살 밖을 내다보는 북한군 포로와 국군 헌병. 이곳은 대구 효성국민학교로 6.25 전쟁 당시 ‘제100 포로수용소’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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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에 있는 어려 보이는 북한군 포로.

그는 최전선에 주로 머물며 영국군과 미군, 피난민들과 북한군 포로 등 전쟁터에서의 일상을 사진으로 남겼는데, 아래의 사진들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뒤인 1950년 9월 중순경의 모습들이다. 33
▲ 북한군 포로들을 확인하고 있는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의 경비대원.

 

부산 최초의 포로수용소는 영도에 있는 해동중학교에 설치되었지만 포로들이 점점 늘어나자 영도 포로수용소를 폐쇄하고 부산 동래의 거제리에 새롭게 포로수용소를 설치하였으며 1950년 8월 15일 이전을 완료했다. 이후 1951년 2월 말에는 경상남도 거제도에 포로수용소를 건설하였고 거제리 포로수용소에 있던 대부분의 포로들은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이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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