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엘리자베스 2세와 필립 공이 처음으로 함께 찍힌 사진
1939년 7월, 잉글랜드 다트머스에 있는 브리타니아 왕립해군학교의 예배당에 영국 왕실 가족이 방문했다. 당시 18세의 그리스 왕자 필립은 조지 6세의 두 공주 엘리자베스와 마거릿을 안내하는 임무를 맡았다.
▲ 왕립해군학교의 예배당의 로얄패밀리
비록 무너진 그리스 왕실의 일원이라 해도 필립 왕자는 큰 키와 매력적인 금발을 가진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미소년이었기에 사춘기의 엘리자베스 공주는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반면 18세 청년에게 13세 소녀는 어린아이로 보였기에, 둘 사이의 로맨스는 먼 이야기. 그런데 세계 제2차 대전이 그들을 연결시켜주었다.
▲ 엘리자베스와 필립의 얼굴만 잘라낸 사진
두 사람은 5년간의 전쟁 기간 내내 서신을 주고받았고, 필립 왕자가 휴가를 맞아 삼촌 루이스 마운트배튼경(Louis Mountbatten, 1st Earl Mountbatten)을 만나기 위해 윈저궁을 방문할 때면 엘리자베스와 재회할 수 있었다.
친척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위문편지는 애틋한 러브레터로 변해갔고, 엘리자베스가 어느덧 숙녀가 되면서 정해진 수순처럼 필립 왕자의 청혼이 이어진다. 전쟁이 끝을 향해 가던 시점이었다.
▲ 여왕이 낀 결혼반지의 안쪽에는 부부와 세공사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글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결혼식을 앞두고 문제가 발생했다. 전후 영국 정부는 긴축정책으로 배급 시스템을 전 국민에게 적용하고 있었는데, 이는 왕족인 엘리자베스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무려 차기 국왕에 오를 영국의 공주가 왕실 디자이너 노먼 하트넬(Norman Hartnell)이 제작한 웨딩드레스 비용 지불을 놓고 의류배급 쿠폰이 모자라는 상황에 처해진 것이다.
▲ 노먼 하트넬의 드레스. 현재 세인트제임스궁(St James’s Palace)에 보관되어 있다.
이때 수백 명의 영국 국민들이 자신들의 쿠폰을 버킹엄 궁전으로 보내왔다.
배급쿠폰을 타인에게 양도하는 것은 불법이었기에 결국 반환되었지만, 왕실 가족의 새로운 출발이 전후 무기력한 영국인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어줄 수 있음을 증명한 해프닝이었다. 결국 영국 정부는 엘리자베스의 웨딩드레스를 위해 배급쿠폰 200장의 추가발행을 허용했다.
영국인들의 새로운 세상을 향한 기대 속에서 두 사람의 결혼식은 BBC의 생중계로 전 세계 2억 명의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1947년 11월 20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