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중반, 조선 최고의 인기 여배우들

미디어의 시대에 유명연예인은 얼굴 자체가 명함이 될 정도로 누구나 알아보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캐릭터로 광고에 등장해 기업체의 얼굴이 되기도 하고, 정치인이나 지식인들보다 높은 신뢰감을 바탕으로 캠페인에 등장하기도 한다. 심지어 본인이 직접 사업을 하거나 정치에 뛰어드는 경우도 있다.

 

미디어를 자주 접하는 오늘날의 한국인 중 아래 여배우들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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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한국 연예계를 주름잡는 여배우들.

 

대부분은 이들의 이름을 알 것이고, 연예계에 크게 관심이 없더라도 한두명 정도는 알아볼 것이다.

 

하지만 50년 전 원로배우들을 나열해놓으면 그들을 아는 사람의 숫자는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여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서 100년 전 유명했던 여자 연예인을 알아보는 사람들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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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의 유명 여배우들.


1926년 신문에서는 조선의 신파극(新派劇) 무대와 활동사진(영화)에 등장하는 여배우들을 맞추는 퀴즈를 내걸었다. 이들을 아는 사람은 엽서에 번호와 이름을 적어서 신문사로 보내면 당첨자에게 소정의 상품이 증정되는 방식.

 

지금의 우리가 21세기의 여배우들을 쉽게 알아본 것처럼, 당시 전국 각지에서 신문사로 도착한 엽서는 수백 장에 이르렀으며, 이중 여배우 5인의 이름을 모두 맞춘 만점자만 해도 125명. 결국 신문사 직원이 눈을 가리고 6명을 추첨해야 할 정도였다.

 

각 번호별 정답과 해당 인물에 붙은 설명은 다음과 같다.

 

1. 김수련(金睡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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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1926년) 17세로 일찍이 토월회(土月會)의 여배우로 광무대 무대에 올라 재명(才名)이 높았으며, 몸을 그르치기 쉬운 여배우 생애에서 아직까지 세상의 부끄러운 소문에 오르지 않은 것이 그녀에게 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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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조선배우학교(朝鮮俳優學校)에서 다시 업을 닦다가 학교에 분란이 있는 관계상, 황금정(黃金町, 현 을지로) 자택에서 이해깊은 어머님께 어리광을 피우고 있다.

 

2. 복혜숙(卜惠淑, 1904~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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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년 22세 여배우 중에서는 가장 유식계급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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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운데가 복혜숙, 왼쪽은 조경희(趙敬姬), 오른쪽은 김명순(金明淳)


일찍이 북선지방(北鮮地方) 모 목사의 영양으로 동경 유학을 갔다가, 세상의 무엇보다도 가극이 좋아서 마침내 부모와 학교와 사랑도 던져버리고 극단에 몸을 던진 이래, 추월춘풍(秋月春風) 칠팔성상(七八星霜) 조선의 비창한 연극사와 함께 자라났으니 일찍이 토월회의 명성이 되었다가 요새는 함흥지방에서 출연 중이다.

 

3. 김정숙(金靜淑,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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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20세의 가장 아담한 미인이니 그의 특색은 아직까지 한 번도 무대에 나타난 일이 없고, 오직 활동사진에만 전문으로 나서서 전국 키네마팬(영화팬)의 동경하는 표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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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소설 ‘탈춤(1926)’에서 연기하는 김정숙. 남자배우는 주인규(朱仁奎).


최근에는 ‘산채왕(1926)’의 출연이며, ‘개척자(1925)’, ‘장한몽(1926)’등에 꽃다운 얼굴을 자주 볼 수 있는 것이니 경상남도 태생으로 목하 다방골 어느 여관에서 눈물겨운 가을을 맞이해 곧 동경으로 유학을 간다고.

 

4. 이채전(李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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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전씨는 일찍이 예술협회 시절, 여학교의 교원생애에서 뛰어나서, 그 남편되는 박승호 씨와 함께 무대에 올라 갈채를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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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모노를 입은 이채전.


그 후에는 부산에 있는 조선키네마(朝鮮キネマ)의 스타가 되어 ‘바다의 비곡(海の秘曲)’에 출연한 일도 있었으나, 이제는 부산에서 적요(寂寥)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

 

5. 이월화(李月華, 1904~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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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츄사’, ‘올카’, ‘칼멘’ 갖은 인생의 농후한 일면을 표현하는데 특재가 있는 여배우로, 일찍이 토월회에서 크게 인기를 얻은 여배우였으나 최근에는 시내 수하정(水下町) 부근에서 사랑의 가정을 이루어 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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