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기생들이 투고한 새해맞이 시
1915년 1월 1일, 매일신보는 새해를 맞아 기생들의 시 작품을 소개했다.
시와 함께 기생의 사진도 함께 실렸는데, 당시 사람들은 흐릿한 얼굴만 봐도 누구인지 알아보았겠지만 지금은 알 길이 없다.
이들은 모두 기생서재에서 글과 음악을 수년 간 공부하여 상당한 수준의 시를 짓고 있으며, 내용이 모두 공통적으로 외로움과 이루지 못하는 사랑을 주제로 기생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다.
염서(艶書)
태산이 막힌 것은 천지의 자연이오
소식이 막힌 것은 인간의 조화로다
청천에 떠 날아가는 저 기럭아
빌어 묻노니 나를 위하여 소식 한 장을 전하여 주려는가
차마 진정코 임의 옥안
그리워 나 못살겠네
– 염서(艶書): 연애편지.
– 청천(靑天):푸른 하늘.
– 기럭아: ‘기러기야’의 준말.
– 옥안(玉顔): 잘생긴 얼굴.
송정(送情)
눈과 입으로 보내는 사랑
천언만어보다 인상은 깊어진다
미목반혜 교소천혜는 미인의 없지 못할 풍정
신년에 따뜻한 정은 봄날과 한가지로 길었도다
– 송정(送情): 정을 주다.
– 천언만어(千言萬語):천 마디 만 마디 말.
– 인상(印象): 대상이 마음에 새겨지는 느낌.
– 미목반혜(美目盼兮): 아름다운 눈과 반짝이는 눈망울.
– 교소천혜(巧笑倩兮): 고운 웃음과 보조개.
소안(笑顔)
화란춘풍 만화방창
일양이 갱생하는 오늘날,
화평한 웃음소리 신년초 누에복록이라
일만가지 근심을 웃음에 부치고저
– 소안(笑顔):웃음 띈 얼굴.
– 화란춘풍(花爛春風): 꽃이 만발하고 봄바람이 부는 철.
– 만화방창(萬化方暢): 따뜻한 봄날에 온갖 생물이 나서 자라 흐드러짐.
– 일양(一陽): 양기
– 누에복록: 양잠으로 생산한 복록(福祿). 신년초의 큰 복을 뜻한다.
번민(煩悶)
첨첨한 이내 수심
누구를 향해 원정하리
가슴은 메어지고 심사는 울울하다
창창한 이 몸으로 우수사려 팔자런가
무거운 머리 수시로 수그러질제
장래의 운명 눈앞에서 아른아른
– 번민(煩悶):마음이 답답하여 괴로워함.
– 첨첨(添添)한: 계속 깊어가는.
– 원정(原情): 하소연.
– 울울(鬱鬱):너무 속이 상함.
– 우수사려(憂愁思慮): 근심과 시름에 차있는 상태.
대인(待人)
적막한 밤
외로운 등하에
한 권 소설 벗을 삼아
올연히 독좌하니
마음은 산란하고
글씨는 안 보인다
때때로 기울이는 고개
혹시 님의 발자취인가
대인난 대인난하니
졸이나니 내 가슴이로다
– 대인(待人): 사람을 기다림.
– 등하(燈下):등잔 밑.
– 대인난 대인난(待人難待人難):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괴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