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전후 연합군 군정기의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는 1938년 제3제국(나치 독일)과의 ‘안슐루스(Anschluss, 병합)이후 2차 대전 종전까지 독일국의 일부였다.

 

그런 이유로 한때 전범국 취급을 받기도 하였으나 1943년 10월 모스크바 선언을 통해 독일에 의한 피해국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이는 오늘날까지도 논란의 대상이다. 합병 당시 오스트리아의 인구는 제3제국의 8%에 불과했지만 나치 SS특무부대원 중 오스트리아 출신은 13%, 강제수용소의 오스트리아 직원도 40%에 달하는 등 ‘희생자’라고 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했기 때문.

 

독일과의 합병이 종전 후에 무효가 되자 오스트리아는 연합군에 의해 1955년까지 분할 점령당하는 시기를 거쳐 현재는 영세중립국으로 남아있다. 아래의 사진은 오스트리아의 연합군 군정기(1945~1955)인 1952년의 풍경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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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자와 함께 마차를 타고 가는 오스트리아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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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리아 시골의 젊은 여성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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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물을 수확한 후 건초를 만드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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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겐란트주(Burgenland)의 소 방목지와 교회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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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겐란트주 모르비슈-암-제(Mörbisch am See)의 농부. 서양문화에서 흔히 보이는 사신(死神)이 들고 있는 낫과 같은 모양의 농기구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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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겐란트주 모르비슈-암-제 마을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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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겐란트주 모르비슈-암-제의 노이지들러 호수(Neusiedler See)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의 헛간 벽. 각종 도구와 말린 옥수수 속대가 매달려있는 전형적인 오스트리아 농촌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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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겐란트주 러스트(Rust) 마을에서 대화를 나누는 주민들과 벽에 한가득 걸려있는 옥수수 속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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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겐란트주 러스트(Rust) 마을 광장의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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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겐란트주의 주도인 아이젠슈타트(Eisenstadt)에 있는 에스테르하지 궁전(Schloss Esterházy).

 

13세기 후반에 지어진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 1622년 헝가리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소유가 되었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궁궐 중 하나로 관광명소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에스테르하지 재단이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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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알베르크주(Vorarlberg)의 건초와 농가가 있는 목가적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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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오스트리아 간 국경에서 여성의 소지품을 검사하는 세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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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오스트리아 간 국경을 통과하는 차량을 확인하는 세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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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슐로스 호텔의 방향을 가리키는 안내판 앞에서 자전거를 탄 우편배달부가 주소를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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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토바이를 탄 두 남성의 서류를 확인하는 경관. 지금이라면 탑승자와 동승자 모두 헬멧 미착용으로 범칙금을 낼 상황이지만 이 당시는 아직 헬멧 착용 의무가 법제화되기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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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리아 우체국 버스(Graft Australian Post)의 모습. 1903년 설립된 스위스의 상용차 업체인 자우러(Saurer)가 오스트리아에서 생산한 디젤버스이다.

 

자우러의 오스트리아 지사는 1959년 슈타이어-다임러-푸흐(Steyr-Daimler-Puch)에 합병되었으며, 이후 본사도 1982년 폐업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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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랙터를 타고 가는 농부 가족의 모습. 트랙터의 제조업체는 슈타이어-다임러-푸흐(Steyr-Daimler-Puch)의 계열사인 슈타이어(Steyr)로 1864년 소총 제조업체로 설립해 1918년부터 상용차와 트랙터 생산을 하였다. 사진의 농부 가족이 타고 가는 모델은 ‘슈타이어 80(Steyr 80)’으로 1949년 출시되었으며 1964년까지 45,068대가 생산된 전설적인 모델. 15마력의 힘을 가지고 있어서 오스트리아에서는 ’15er Steyr’로 통용되었다.

 

슈타이어-다임러-푸흐는 위의 우체국 버스 사진에서도 나왔듯이 한때 자우러(Saurer) 오스트리아 지사를 인수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사라진 기업이다. 하지만 모기업이 폐업하기 전에 분리된 ‘슈타이어 트랙터(Steyr Traktoren)’는 현재 CNH 인더스트리얼의 계열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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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버외스터라이히주(Upper Austria)의 잘츠카머구트(Salzkammergut)에 위치한 잘차흐(Salzach) 계곡 아래에 있는 평화로운 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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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크트 볼프강 임 잘츠카머구트(St. Wolfgang im Salzkammergut)에서부터 잘츠부르크에 위치한 샤프베르크산(Schafberg, 1783m)까지 놓인 철로를 따라 달리는 기차. 1893년 8월 1일 개통되어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증기기관차로 알려져 있다.

 

샤프베르크 철도(Schafbergbahn)는 현재도 운용되고 있으며 총길이는 5.85km, 고도 차이는 1,200m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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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버외스터라이히주와 잘츠부르크주 사이에 있는 볼프강 호수(Wolfgangsee)에서 캠핑을 즐기는 관광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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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궁인 쇤브룬 궁전(Schloss Schönbrunn).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1961년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의 회담이 열린 장소였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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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프부르크(Hofburg) 왕궁의 모습. 600년간 합스부르크 왕가가 주요 궁전으로 사용하였으며, 1946년 이후에는 오스트리아 대통령의 관저와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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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의 중심부에 위치한 순환 도로 ‘링슈트라세(Ringstraße)’에서 가장 큰 건물인 오스트리아 국회의사당(Parlamentsgebäude)의 모습.

 

1874년 건축가 테오필 한센(Theophil Hansen, 1813~1891)이 그리스 신전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1883년 완공하였으며,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 있는 아테나 분수(Pallas-Athene-Brunnen) 역시 관광명소로 유명하다. 제2차 대전 중인 1945년 2월 7일에 연합군의 공습으로 크게 파괴되었다가 복원되었으며, 현재는 오스트리아 대통령의 취임식 등 국가행사가 열리는 상징적인 곳이다. 【사진: Paul Alm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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