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미국위문협회(USO)의 주한미군 위문공연
미국위문협회(United Service Organizations, USO)는 1941년 2월 4일,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메리 쇼트웰 잉그레이엄에 의해 설립된 단체이다. 잉그레이엄은 USO설립의 공을 인정받아 ‘메리트 훈장(Medal for Merit)’을 수여받았으며 이는 여성으로서는 최초의 수상자였다.
USO의 목적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들의 ‘제2의 고향’이 되는 것이었다. 미국 국방부의 제휴와 지원으로 위문공연은 물론 군대 내의 편의시설, 가족과의 전화연결을 제공하는 봉사를 하던 USO는 전쟁이 끝남에 따라 1947년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 메리 쇼트웰 잉그레이엄(Mary Shotwell Ingraham, 1887~1981)
하지만 곧 일어난 6.25 전쟁을 계기로 USO는 부활하였고, 이후 현재까지 계속 미군들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USO는 연예인들을 동원해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아주는 ‘캠프 쇼(camp shows)’라고 불리는 공연으로 유명했으며, 1954년 2월에 한국을 방문한 마릴린 먼로 역시 USO 캠프 쇼 무대에 선 것이었다. (관련 글: 마릴린 먼로의 한국방문)
아래의 사진은 마릴린 먼로가 다녀간 지 두 달 후인 1954년 4월, ‘슬랩시 맥시(Slapsie Maxie)’가 방한해 공연을 펼치는 모습이다. 슬랩시 맥시는 국제 복싱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된 맥시 로젠블룸(Maxie Rosenbloom, 1907~1976)의 별명으로 그는 은퇴 후 연예인으로 활동하였다.
▲ 라이브 공연이 준비된 무대 앞에 모인 미군 장병들.
▲ 돌과 흙바닥, 탄약 박스 등으로 마련된 좌석에 입추의 여지없이 빽빽하게 미군 장병들이 앉아있는 모습.
▲ 슬랩시 맥시(가운데)가 공연을 함께할 연예인들을 소개하고 있다. 왼쪽의 금발 여성은 글로리아 폴(Gloria Pall)이다.
▲ 슬랩시 맥시는 공연에 모델이자 배우인 글로리아 폴(Gloria Pall, 1927~2012)을 자주 대동했다. 그녀는 2차 대전에서 항공기 정비사로 근무한 바 있으며, 1947년 한 미인대회에서 우승하며 연예인으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 미모를 뽐내는 글로리아 폴. 불과 두 달 전에 왔던 마릴린 먼로에 비하면 인지도는 한참 아래였지만 영화와 TV에 출연하는 연예인이었다.
▲ 장병들은 평소 보기도 힘든 연예인을 직접 만나는 것만으로도 특권을 누리는 느낌이었으며, 전형적인 미국의 백인 미녀가 이 삭막한 동양의 땅에 등장하는 것은 ‘고향에서 오는 가족을 보는 것 같았다’고 한다.
▲ USO의 공연에 참가하는 연예인들은 긴 여행에 완전히 지쳤지만 젊은 장병들의 엄청난 호응과 에너지는 그들을 춤추게 했다.
▲ 당시 27세였던 글로리아 폴은 175cm의 큰 키에 금발, 육감적인 몸매로 대부분 10대와 20대였던 미군 장병들에게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 공연을 펼치는 댄서 뒤로 ‘USO CAMP SHOW’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 서커스에 가까운 묘기를 펼치는 위문공연팀.
▲ 도구를 이용한 공연을 펼치는 모습. 지금도 그렇지만 군인에 대한 예우가 남달랐던 미국은 할리우드까지 나서서 애국심을 고취했고, 수많은 연예인들이 위험한 상황을 아랑곳하지 않고 USO공연에 자원했다. 공연을 위해 참가한 연예인들 중 비행기 추락, 질병과 사고로 지금까지 28명이 사망했을 정도다.
▲ 슬랩시 맥시가 올라와 스탠딩 개그를 펼치고 있다. 오늘날 USO는 약 300명의 직원을 두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44,0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등록되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 공연을 마치고 장병들에게 인사를 하는 위문공연단. USO는 이런 일련의 활동으로 2011년 국립예술메달(National Medal of Arts)을 수상하며 공로를 인정받았다. 【사진: Edward Jay/ US Ar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