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 [17] 설도(薛濤, 기생)
평양 명기 설도(薛濤)는 방년이 21세라.
본래 평양 출생으로 11살에 기생 서재에 입학하여 여러 가지로 노래와 춤을 공부하였는데 천생여질이라.
청아한 성음은 시조, 가사, 잡가 등이 무비절창이요. 승무, 검무, 항장무 또한 개개 선수로다. 앵순호치가 열릴 때 낭랑한 말소리로 손님을 접대하는 법은 수단도 능란하고 교태도 비길 곳이 없다.
이러므로 이름이 평양 일경(지역)에 자자하니 은안준마 호화객은 모두 설도의 문 앞으로 채찍을 던지는지라.
▲ 설도(薛濤)
그뿐 아니라 아름다운 성질을 가진 설도는 몸은 기생으로 출신하여 있으되 60여 세 된 노부모를 효성으로 봉양하여 혹시 부모의 병이 있을 때는 몸에 의대를 끄르지 아니하고 얼굴에 수태가 가득하여 잠시도 병석을 떠나지 아니하고 의약으로 치료하며 또한 성품이 온화하여 평생에 큰소리를 입 밖에 내지 아니하므로 설도를 접촉하는 사람은 천만 가지 수심이 있던 가슴이라도 봄 해에 눈 녹듯 할지라.
「세월아 가지를 마라. 네가 가면 내가 늙어」 하는 것은 설도의 탄식이요,
「화류계를 사절하고 유정낭군을 만났으면」 하는 것은 설도의 소원이라.
적적히 뷔인 밤에 일병잔촉 벗을 삼고 올연독좌하여 소설 한 권으로 만단 회포를 잊고자.
【매일신보 1914.02.18】
– 은안준마(銀鞍駿馬): 은으로 장식한 안장을 얹은 좋은 말
– 서재(書齋): 기생학교를 칭하는 말
– 천생여질(天生麗質): 타고난 아리따운 자질
– 무비절창(無比絕唱): 아주 뛰어나서 비길 데가 없는 명창
– 앵순호치(櫻脣皓齒): 앵두처럼 고운 입술과 하얀 치아
– 의대(衣帶): 옷과 띠라는 뜻으로, 갖추어 입는 옷차림을 이르는 말
– 수태(愁態):근심스러워하는 모양
– 유정낭군(有情郞君): 인정 많은 남편
– 뷔인: 빈. 비어있는
– 일병잔촉(一柄殘燭): 꺼져 가는 촛불 한 자루
– 올연독좌(兀然獨坐): 홀로 단정히 앉아 있음. 독수공방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