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 [20] 금홍(錦紅, 기생)
득의춘풍 삼오시에 잘 놀아라. 금홍(錦紅)이로다.
인생 앗차 죽어지면 만수산중 운무로구나.
황해도 봉산 사리원은 박금홍의 고향이오, 동구 안 파조교 장안사(長安社) 연극장은 박금홍의 현주소로다.
시조는 아직 멀었고 수심가, 놀령사거리, 육자배기, 황주난봉가, 판소리는 정말 잘하는 모양이야.
키는 호리호리하고 얼굴은 아리잠직하여 흉잡아 낼 곳이 없는 것은 금홍을 경국지색이라 말할 수 있을는지.
사람보고 눈웃음치는 것은 무슨 뜻을 발표하는 것이런가.
▲ 박금홍(朴錦紅)
작년 가이월에 경성으로 올라오니 구경꾼은 금홍이 보기 위하여서 장안사를 가겠다 하는 것을 보아도 가히 짐작할 것이로다.
사람이 똑똑할수록 팔자는 사나운 것이라. 금홍의 모친은 벌써 저승에서 꿈을 꾸고, 그 부친 되는 자는 돈에만 눈이 뜨였다 하니, 앗차 하는 인생으로 지각이 차차 들어가는 금홍이는 한숨과 눈물이 개일 날이 없으리로다.
▲ 산 속 짙게 깔린 안개(산중 운무)
“저는 아홉 살부터 소리공부를 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소리가 어찌나 하고 싶은지..”
“여러 구경 오시는 손님들이 나더러 앞이마를 짓는다고 흉을 보셔요. 그렇지마는 워낙 앞이마가 좁으니까 할 수 없이 잔털만 뽑지요.”
“시골 있을 때도 여기저기 다니며 소리하여 보았지마는 처음으로 서울을 와서 연극장에 나서니까 어찌나 서먹서먹한지요.”
“그것도 잠시야요. 지금은 손님들이 손뼉 치고 잘한다고 칭찬하는 소리에 신이 나서 못 견디겠어요. 이목도 점점 넓어지고요.”
【매일신보 1914.02.21】
– 만수산중 운무:만수산 깊은 곳의 안개. 알 수 없는 저승길을 이르는 말
– 득의춘풍(得意春風): 바라는 일이 다 잘되는 시기
– 삼오시(三五時): 열다섯 살
– 아리잠직: 키가 작고 모습이 얌전하며 어린 티가 있다.
– 가이월: 가이는 ‘한가위’의 전남 방언으로 가이월은 추석이 있는 달. 1913년의 추석은 9월 15일
– 짓는다: ‘지우다’를 예스럽게 이르는 말. 이마를 넓게 하려고 손을 댄다는 의미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