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러일전쟁 중 포트아서(여순항)의 러시아 방어부대 모습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그 전리품으로 요동반도를 할양받지만 러시아와 독일등의 요구로 반환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러시아는 요동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대련의 여순(Lushun, 旅順)을 1898년에 조차하여 ‘포트아서(Port Arthur)’라 칭하고 군항으로 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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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는 ‘뤼순커우 구’가 된 포트아서 위치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은 육군에 대한 해상으로의 보급과 해전의 불리함을 딛기 위해 포트아서를 당연히 지나칠 수 없었다. 치열한 공방전 끝에 1905년 1월 2일, 마침내 포트아서(여순항)는 일본군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아래의 사진들은 일본과의 일전을 대비해 요새화한 포트아서의 러시아 방어부대 모습과 전투 전후의 모습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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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트아서 요새를 구축 중인 러시아 군인과 민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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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에게 포위된 포트아서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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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방어부대의 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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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새처럼 준비된 포트아서의 러시아 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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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장교들의 포트아서 요새 순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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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장교가 일본의 폭격을 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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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벙커에 배치된 6인치 대함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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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 완료된 9인치 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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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진산(黃金山)에 설치된 9인치 포를 장전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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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새에서 내려다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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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아침부터 사격 대기 중인 포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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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위된 포트아서 참호의 보초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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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트아서의 참호 근처로 일본군의 포탄이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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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의 포위공격 중, 위장한 통나무 대포 주변에 떨어진 포탄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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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위 공격을 받는 중의 러시아군의 점심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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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군함의 포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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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트아서의 히로인 카리티나 코로체비치(Kharitina Evstafevna Korotkevich, 1882~1904). 여자로는 유일하게 포트아서 방어전에 참전하였으며, 사진 촬영 몇 시간 후 사망하였다.(1904년 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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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무대로 실려온 부상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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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트아서 전선의 지원 요청을 기다리는 예비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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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트아서 요새 바깥의 러시아 예비병들의 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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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트아서의 헌병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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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의 맹렬한 폭격 후 파괴된 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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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이 포트아서가 내려다보이는 후석산의 요지인 해발 203m 고지를 포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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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군인들이 전투가 소강상태에 들어가자 군화를 수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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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트아서의 마린스키 병원 앞에 있는 러시아군 부상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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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항하기 며칠 전, 러시아군 병사들이 청나라가 건설한 울타리 주변에 서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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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일간의 혈전 끝에 러시아군은 항복한다. 러시아군의 사상자는 28,200명, 일본군의 사상자는 57,789명으로 승리한 쪽의 피해가 오히려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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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 보초병과 러시아군 보초병이 교대식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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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가 끝난 후 일본군과 러시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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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복하는 포트아서 주둔 러시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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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배한 러시아제국의 총사령관 아나톨리 미하일로비치 스테셀(Anatolii Mikhailovich Stoessel, 1848~1915) 장군은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4년간 복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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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군 패잔병들이 포트아서를 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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