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역사상 가장 황당한 자책골
역전승을 노린 자책골
축구 역사상 가장 우스꽝스럽고도 황당했던 경기는 1994년 쉘 캐리비안컵(Shell Caribbean Cup) 예선전에서 일어났다. 당시 예선 1그룹은 바베이도스, 그레나다, 푸에르토리코가 속해있었고 단 1팀만이 결선에 진출하는 방식.
최종전을 앞두고 그레나다가 예선을 마친 푸에르토리코와 동률을 이루었으나 골득실차에서 앞선 아슬아슬한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최하위인 바베이도스에게도 그레나다를 2골차로 꺾는다면 라운드를 통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특히 최종전은 홈에서 열리는 상황이라 가능성이 그리 희박한 것만도 아니었다.
▲ 최종전을 앞둔 순위
드디어 1994년 1월 27일, 바베이도스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최종전에서 바베이도스는 먼저 2골을 기록. 골득실 +1(그레나다 0)을 만들며 결선 진출의 꿈을 이루는 듯 했다. 하지만 후반 83분 그레나다가 만회골을 성공시키며 상황은 2:1이 되었다.
이렇게 되면 바베이도스가 골득실 0, 그레나다가 골득실 +1이 되므로 당연히 그레나다가 진출하는 것이 현재 대부분 축구대회의 규정이지만, 조직위가 두 국가의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위해 최종전을 앞두고 급조한 규정이 상황을 바꾸게 된다.
당시의 캐리비안 컵은 무승부를 허용하지 않았는데, 거기에 더해 지금처럼 연장 전후반을 모두 치르는게 아닌, 골을 넣는 순간 경기가 끝나는 ‘골든골‘ 규정이 있었다. 결국 연장전에 돌입하면 1골 차 승부밖에 날 수가 없었고 무의미한 연장전이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 우리에게도 익숙한 골든골
이에 박진감 넘치는 연장전을 위해 조직위의 관계자들은 경기를 앞두고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레나다와 바베이도스간 최총전의 연장전 골든골은 2점으로 한다”
조직위의 관계자들은 이 규정으로 무의미한 연장을 치러야 하는 상황을 없애버렸다고 자찬하고 있었는데, 과연 세상일이 의도한 대로 순조롭게 흘러갔을까?
다시 경기로 돌아가 바베이도스 선수들은 다잡은 줄 알았던 경기가 불과 7분을 남기고 2:1이 되자 미친듯이 득점을 위해 뛰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결국 후반 87분 바베이도스의 수비수 실리와 골키퍼 호레이스 스타우테는 공을 서로 주고 받으며 눈짓을 보내더니 자신들의 골대에 공을 넣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기존의 규정대로라면 무승부로 연장을 간다 하더라도 골득실차를 한 점밖에 줄일 수 없는 바베이도스는 도저히 올라갈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규정을 교묘히 이용해서 연장을 간 다음 2점슛을 노리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것.
▲ 희대의 자책골 영상
이 광경을 본 그레나다 선수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아니 왜 자기 골대에다 공을 넣은거지..’ 라고 의아해 하는 순간, 사태를 파악한 그레나다 감독은 “빨리 너희도 자책골을 넣으라”고 그라운드 밖에서 외치는 광경이 연출된다.
눈치 빠른 선수들은 자책골을 만들려고 했지만 눈치없는 선수들은 여전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을 이해한 그레나다 선수들에게 양쪽 골대는 모두 공격대상이 되었다. 지든 이기든 승부만 나면 결선에 진출하는 그레다나측은 어느 쪽이든 가까운 골대를 향해 슛을 하기 시작한 것. 반면 바베이도스 선수들은 어떻게든 연장으로 돌입하기 위해 양쪽의 골대를 모두 수비하는 황당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우왕좌왕하는 혼돈 속에 결국 경기는 연장으로 이어졌고, 정의의 신(神)도 한눈을 판 건지 악마와의 거래를 한 바베이도스가 연장전에서 2점슛(?)을 성공시켜 4-2로 예선을 통과한다.
▲ 불꽃남자 바베이도스의 2점슛 성공
경기후 그레나다의 감독 제임스 클락슨은 “사기당한 느낌이다. 이 규칙을 만든 인간은 정신병원에나 가야한다. 우리 선수들은 어느 골대로 공격해야 될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나는 평생 이런 경기를 본 적도 없을 뿐더러 승부에서 이기기 위해 득점하지 않는다는게 말이 되는가” 라며 폭발하고 말았다.
이후 이 2점짜리 골든골 규정은 당연히 폐지되었고, 꼼수로 결선에 진출한 바베이도스는 A조 3위에 그치며 탈락하였다.
▲ 이날 이후 항상 묶여서 언급되는 두 국가
상대 고르기 자책골
그레나다와 바베이도스간의 경기가 전적으로 선수들만의 잘못이라기보다 이상한 규정을 만든 캐리비안컵 조직위원회의 잘못이 크다면, 베트남에서 열린 1998년 타이거컵에서 벌어진 자책골 소동은 조금 달랐다.
1998년, 동남아시아 10개국이 참가하는 ‘동남아의 월드컵’ 타이거컵 A조 예선 최종전에서 만난 태국과 인도네시아는 여유로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준결승이 확정된 양팀은 손쉬운 결승전 진출을 위해 ‘준결승전 상대를 고르는’ 스포츠에서 하지 말아야 할 짓을 저지르게 된다.
▲ 타이거컵 로고
B조의 싱가포르(1위)와 베트남(2위)중 열광적인 응원이 함께하는 홈팀 베트남보다는 상대 전적에서 우위를 보이고 비교적 약체로 평가되는 싱가포르를 만나려면 패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전반전은 제대로 된 공격없이 지루하게 0:0으로 끝났다.
조 2위를 노리며 추한 경기상황을 연출하던 후반 52분, 어쩔 수 없이 인도네시아의 공격수 미로가 골을 성공시켰다.
그는 골을 넣고 좋아하기보다 “그 따위로 하지 말라”는 듯한 도발적인 동작을 취하였고, 이후 양 선수들이 유효슈팅만 하면 허무하게 골이 허용되는 등 2:2까지 만들어졌다.
▲ 경기 하이라이트
그리고 후반 추가시간, 인도네시아 진영에서 볼이 머무르며 경기가 그대로 끝나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인도네시아의 무르시드 에펜디가 자기 골문으로 돌진하였다.
설마하던 태국 공격수들이 막으려 했지만 골키퍼도 비켜선 가운데 슛은 성공. 결국 3:2 태국의 승리로 경기는 끝나버렸다.
▲ 결승 자책골의 주인공 무르시드 에펜디
경기 후 FIFA는 페어플레이 정신을 위반한 양팀에게 4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하였고, 무르시드 에펜디에게는 1년간 선수자격 정지의 엄벌을 내린다. 이후 그렇게 싱가포르를 고른 인도네시아는 준결승에서 싱가포르에게 보기좋게 2:1로 패배하였고, 태국 역시 홈팀 베트남에게 0:3으로 대패하였다.
‘베트남 거르고 싱가포르’ 라는 공개굴욕으로 전투력이 상승했는지 싱가포르는 결승에서 주최국 베트남을 꺾는 기염을 토하며 타이거컵 첫 번째 우승을 차지하였다.
태국과 인도네시아는 3,4위전에서 다시 만나 정규시간 동안 3:3으로 비기는 피터지는 승부를 벌인 후, 승부차기에서 5:4로 인도네시아가 승리하며 말 많았던 추한 승부를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