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 [36] 홍도화(洪挑花, 기생)

아리따운 기생이라는 평판이 조선인 사회에는 고상하고, 일반 내지인에게 더욱 사랑을 받는 홍도화(洪挑花)는 평양 태생으로 8세 때부터 기생서재에 입학하여 다년간 가무를 공부하여 화류계에 출신 하였으니 가무는 물론 잘하는 터인데.

 

연전에 안주 성내(安州城內)에 얼마 동안 있어 「안주의 일등 명기」라는 이름을 얻고 지금은 평양부 대흥면 사창동(大興面司倉洞)에 있는데, 어렸을 때에 부친을 여의고 편모시하에 적빈(赤貧) 생활은 고여시금여시(古如是今如是)라.

 

비상한 곤란이 도화의 신상을 떠나지 아니하니 뉘 아니 도화의 가련한 정상을 애긍히 여기리오.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 1
▲ 일제시대 안주 시내 모습

 

그러므로 작년 삼월에는 어떤 사람과 인연을 맺어 백 년 신세를 의탁하리라 결심하고 화류계를 사절하기로 작정하였다가 사불여의하여 소원을 성취하지 못하매 연연한 몸에 여러 가지 고생은 청천흑운같이 사방으로 덮여 들어오니 철석같이 굳게 먹었던 도화의 마음도 자연히 변천되어 다시 기생계로 나옴은 실로 부득이한 일이라.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 3
▲ 홍도화(洪挑花)

 

“내 나이 어느덧 열아홉이 되었구나. 어느 시절에 좋은 인연을 만나 볼까.”

 

“내 마음이 즐거워 기생 나온 것이 아니요. 편모를 모시고 빈곤 생활을 견디지 못하여 박부득 한 일이올시다.”

 

“아… 사창에 달빛은 명랑하다마는”

하고 수심이 아리따운 얼굴에 가득한 것은 홍도화(紅桃花) 가지 하나가 아침 이슬을 머금은 듯.

【매일신보 1914.03.12.】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 5
▲ 홍도화(紅桃花)

 

– 내지인(內地人): 외국이나 식민지에서 본국을 이르는 말. 일본인
– 기생서재(妓生書齋): 기생학교
– 연전(年前): 몇 해 전
– 편모시하(偏母侍下):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처지
– 적빈(赤貧): 몹시 가난함
– 고여시금여시(古如是今如是): 예나 지금이나 같다. 사물이 조금도 변치 않음
– 비상(備嘗)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두루 겪는
– 정상(情狀): 딱하거나 가엾은 상태
– 애긍히(哀矜)히: 불쌍히 여기어
– 사불여의(事不如意): 일이 뜻대로 되지 아니함
– 연연(軟軟)한: 연약한
청천(晴天)에 흑운(黑雲): 맑은 하늘에 먹구름
박부득(迫不得): 매우 급박하여 어떻게 할 수가 없음
사창(紗窓): 비단으로 바른 창. 여자가 거처하며 아름답게 꾸민 방
– 명랑(明朗): 흐린 데 없이 밝고 환함
– 홍도화(紅桃花): 홍도나무(복숭아나무)의 꽃. 원문 괄호 내의 한자는 ‘挑花紅(청나라의 담홍유를 칠한 자기)’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문장의 ‘가지’라는 단어로 홍도화의 오타임을 알 수 있다.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