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 [39] 월희(月姬, 기생)

황해도 해주 읍내에 유명한 기생으로 첫손가락을 아니 꼽지 못할 김월희(金月姬)는 방년이 17세라.

 

유시부터 학문에 마음이 있어 어떤 여학교에 입학하여 3년을 공부하였으나 가세가 극빈하여 할 수 없이 졸업까지는 채우지 못하고 퇴학을 면치 못하였으니, 월희는 그 길로 기생이 되어 15세부터 가곡과 음률을 연습하였더라.

 

그러나 여자로서 더욱이 기생으로서 보통지식을 가진 사람은 월희로 하여금 고시를 삼았도다.

귀염성스럽고 어여쁘고 자태 있고 유순하고 다정한 것은 월희의 천정한 품질이요. 노래, 가사, 거문고, 양금이 제일 선수로다.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 1
▲ 김월희(金月姬)


남남히
 하는 일본말은 듣는 사람이 잠시 동안은 반할 듯.

대인 접객의 능활한 수단은 여러 손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겠도다.

 

한편으로는 기생 영업을 하여 4~5의 가족을 원만히 생활케 하고
한편으로는 항상 마음에 있는 학문을 닦기 위하여 틈틈마다 일본말을 공부하느라고 일본인 교사를 초빙하여 주야로 열심히 공부하는데 월희의 굳은 심지는 가히 찬하 하겠도다.

 

“저는 어떻게 하든지 한번 학문을 잘해볼 생각이올시다.”

“어찌하면 돈을 조금 벌어놓고 마음대로 서책을 벗을 삼아 놀아 볼까요.”

【매일신보 1914.03.15.】

– 유시(幼時): 어릴 때
– 고시(顧視): 돌아다봄. 여러 기생들이 교훈으로 삼았다는 의미
– 천정(天情):타고난 성품
– 남남히(喃喃히):혀를 빠르게 놀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재잘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 능활(能猾): 능력이 있으면서 교활함
– 구:식구의 옛말. 사람
– 찬하(攢賀):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경사스러운 일을 축하함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

 

 

화가 ‘계사(桂史)’로 활동한 월희

 

재주 많은 기생으로 활동하던 월희(月姬)는 돌연 평양으로 가서 서화가 옥경산인(玉磬山人) 윤영기(尹永基)의 제자가 되어 ‘계사(桂史)’라는 이름의 화가로 활동했다.


붓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상당한 재능을 보여 신문지상에도 3일 만에 그림 난초 사진이 보도될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 3
▲ 화가 ‘계사(桂史)’의 『난』

 

이 사진의 주인은 평양서화회의 윤옥경 화백이 60년이래로 처음 보는 재주라고 칭찬하는 계사(桂史)라.

 

계사는 해주에서 ‘월희’란 이름을 하고 기생 노릇을 하였는데 그 부친은 해주에서 유명한 풍류객으로 글씨의 명필이라.

 

기생 노릇 하는 것에 한편 보통학교에 다니고, 한편 그 부친에게 글씨를 배우고 있다가 평양의 윤옥경 화백의 난초에 대한 유명한 소문을 듣고는 단연히 기생을 중지하고 수백리 원정을 평양으로 와서 10여 일 전에 윤옥경 화백의 제자가 되었는데, 이미 글씨에 익숙해서 붓대 잡을 줄을 알기는 하나 난초 배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그 필력이며 잎사귀와 꽃을 만드는 법이 몇 달 몇 해 배운 사람에게 못지 아니한 고로 스승인 윤옥경 화백도 대단히 귀하게 여기는데 사진과 같이 게재한 난초가 즉 배우기 시작한 지 사흘 만에 그린 것이라.

 

금년에 나이 19살이오, 평양 강안동 대성관이 거류하는 곳이라.

【매일신보 1916.01.19】

윤옥경: 서화가 옥경산인(玉磬山人) 윤영기(尹永基)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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