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마을 쿠론베노스타(Curon Venosta), 71년 만에 재등장
이탈리아 북동부에 위치한 남부 티롤에 있는 레시아 호(Lago di Resia)는 해발 1,498m에 위치한 인공호수.
아름다운 풍경과 더불어 1357년에 지어진 산타 카테리나 알레산드리아(Santa Caterina d’ Alessandria)교회의 종탑이 수면 위로 뾰족이 솟아있는 모습은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이끄는 곳이다.
▲ 레시아 호수와 종탑
물속에서 재등장한 마을
그런데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2021년 5월 14일 발전소 수리를 위해 호수의 물을 일시적으로 빼면서 마치 전설의 대륙 아틀란티스처럼 71년 만에 잃어버린 마을 쿠론베노스타(Curon Venosta)가 지상에 드러났다.
▲ 지상으로 나온 쿠론베노스타(Curon Venosta)
▲ 계단의 흔적
물속에서 오랜 기간 부식된 마을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사라지고 황폐하고 으스스한 모습이 되어버린 것을 볼 수 있다.
▲ 마을 기간 시설의 흔적
음식 창고로 쓰였을 지하실, 알프스의 추운 바람을 막아주던 벽들, 갈 곳 없는 돌계단 등을 본 현지 주민들은 이곳에 정말 자신들의 부모와 할아버지들이 살았던 것인지 기묘한 기분이 든다고 말하며 옛 마을 주변을 거닐었다.
마을이 사라지게 된 배경
평화로운 마을이 사라진 배경은 발전소 건설을 위한 개발에서 비롯되었다.
▲ 침수 전의 쿠론베노스타
당시 이곳에 살던 주민들에 따르면, 1940년 공사계획이 시작될 당시에는 ‘호수의 깊이는 5m밖에 되지 않을 것이며 침수되는 집은 일부일 것’이라고 전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공사 시작 후 마을 게시판에는 약속과 달리 22m 깊이의 호수가 될 것이라는 안내가 ‘이탈리아어’로 작성되었다고 하며 이에 분노한 주민들은 시위도 하고 교황을 찾아가 탄원서도 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 한때 오스트리아의 일부였던 남부 티롤 지방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탈리아에 합병되었으며, 그런 이유로 이곳에 있던 오래된 마을 쿠론베노스타는 대부분 주민들의 모국어가 독일어였다. 마을의 독일어 명칭은 그라운임빈슈가우(Graun im Vinschgau).
결국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50년 발전용량 2억 5천만 kWh를 갖춘 대형댐이 완공되었고, 이후 수량이 늘면서 원래 있던 두 개의 자연호수가 합쳐지며 레시아 호수가 생겨났다.
당시 163채의 집과 5.23 km²의 농장과 과수원이 침수되어 사라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강시민공원을 포함한 여의도 면적이 4.5 km²이다.)
▲ 1950년의 종탑 주변과 현재 같은 위치의 모습.
이후 주민 1,000여 명 중 400여 명이 떠나지 않고 남아 계곡의 동쪽에 마을을 재건하였으며 현재 인구는 2,380명(2020.08.31 기준)인데 여전히 97.34%가 독일어를 모국어로 하는 주민이다.
전설의 고향
비록 마을은 사라졌지만 교회 종탑만이 물 위로 솟아있는 신비로운 모습은 이곳의 랜드마크가 되어 외부인들에게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 종탑이 그려진 마을의 문장.
혹독한 겨울이 오고 호수가 얼어붙으면 탑에서 종소리가 들린다는 전설도 있지만, 사실 호수가 생기기 이전인 1950년 7월 18일에 종은 탑에서 제거되었기 때문에 이는 루머이다.
▲ 겨울의 레시아 호수
하지만 미국의 OTT 서비스 기업인 넷플릭스는 이 전설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 ‘쿠론의 종소리(Curon, 2020)‘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마을의 종탑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들으면 도플갱어가 나타나 본체를 해치고 삶을 빼앗는다는 줄거리.
시놉시스만 보면 흔한 옹고집전류의 이야기지만 삶의 전부였던 마을이 강제로 사라진 주민들의 원한과 분노가 실제 역사로 존재했음을 알고 나면 무심코 지나칠 수 없게 된다.
▲ 쿠론의 종소리(Curon) ©넷플릭스
또 1951년에는 레시아 호수에 23명이 탑승한 버스가 빠져 단 한 명만 생존하고 모두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는데, 이처럼 분위기나 배경 스토리나 여러 가지로 공포영화에 필수인 장치를 갖추고 있는 곳이라 앞으로도 많은 작품의 소재로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