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영국에서 유행한 ‘살인 젖병’
빅토리아 시대(1837~1901), 영국 유아가 의자에 앉아 천진난만하게 젖병을 빨고 있다.
이 시기의 여성들은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기 위해서 끈으로 칭칭 동여맨(밴드나 지퍼, 훅, 벨크로 등이 상용화되지 않았던 시기이다) 코르셋을 벗고 수유가 끝나면 다시 착용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런 골치 아픈 과정을 줄여주는 이 발명품은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병과 꼭지가 달려있는 고무튜브가 연결되어 아이들은 병에 담긴 모유를 외출 시나 집에서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간편하게 수시로, 심지어 엄마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먹을 수 있었다.
또한 아이가 이런 젖병을 휴대하는 것은 엄마의 지극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는 모습처럼 여겨져 점점 유행은 퍼져갔다.
특히 젖병의 상품명도 ‘Mummies Darling’, ‘The Princess’, ‘Little Cherub’, ‘The Alexandria’와 같이 사랑스럽거나 우아하게 지어져 마치 품질과 안전은 보장된 것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소비자를 기만했다.
하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단점은 사진으로 봐도 알 수 있듯이 청소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의사들은 이 젖병이 위험하다며 우려를 표시했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살림전문가로 유명세를 떨쳤던 이사벨라 비튼(Isabella Beeton, 1836~1865)이 “2~3주 정도는 젖병을 굳이 세척할 필요가 없답니다~“라는 주장을 그녀의 저서에 적으면서 여성들을 안심시켰다.
예상할 수 있듯이 이 온화한 이름의 젖병은 ‘The Killer’ 혹은 ‘The Murderer‘와 같은 살벌한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보통 입이 닿는 순간부터 세균은 쉽게 번식하기 시작하는데, 가느다란 고무튜브의 병은 말 그대로 박테리아 배양 장치였던 것이다.
의사들의 예측을 듣지 않고 유명 살림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사용된 ‘살인 젖병‘때문에 영국의 유아사망률은 치솟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이사벨라 비튼도 분만 중 ‘세균 감염‘이 원인인 산욕열로 인해 28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이 젖병이 대유행하던 시기에 영국 유아 10명 중 2명 정도만이 그들의 두 번째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