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볼셰비키의 포격으로 파괴된 모스크바 크렘린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으로 로마노프 왕조가 붕괴되고 ‘최후의 차르’ 니콜라이 2세가 폐위되며 러시아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군주제 타도의 환희아래 러시아공화국이 수립되었으나, 곧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끄는 10월 혁명의 소용돌이에 붕괴되었다. 모든 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 레닌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 수립을 선포하였다.
아래의 사진은 당시 반혁명파의 거점 중 하나였던 모스크바 크렘린이 1917년 10월 말부터 11월 3일까지 벌어진 볼셰비키의 포격으로 쑥대밭이 된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 1917년 11월, 포격으로 난장판이 된 말리 니콜라이 궁전(Малый Николаевский дворец/Small Nicholas Palace) 내부 모습.
▲ 1917년 11월, 포격을 당한 말리 니콜라이 궁전의 외관.
▲ 1917년 11월, 포격을 당한 말리 니콜라이 궁전의 외관 정면. 이곳은 그랜드 크렘린 궁전(Grand Kremlin Palace/Большой Кремлёвский дворец)이 건설되기 전까지 황실 거주지로 쓰였다. 1929년에 철거되었으며, 현재는 무기고와 러시아 대통령 경호처가 있는 14번 건물이 들어서 있다.
▲ 1917년 11월 5일, 포격을 당한 성모승천대성당(Cathedral of the Dormition)의 내부에서 본 정문 ‘로얄 도어(Royal door)’
▲ 붉은 광장의 스파스카야 타워(Spasskaya Tower). 건물 상부에 포격으로 난 구멍이 보인다.
▲ 붉은 광장에서 본 파괴된 니콜스카야 타워(Nikolskaya Tower)의 문.
▲ 1917년 11월 14일, 파괴된 러시아 총대주교 사원 3번 방을 촬영한 모습. 진열장은 모두 깨져있고 바닥은 깨진 유리와 벽돌조각, 먼지로 뒤덮여 있다.
▲ 포격으로 파괴되기 전 총대주교 사원 3번 방의 모습.
▲ 총대주교 사원 3번 방의 박살난 진열대.
▲ 총대주교 사원을 뚫고 들어간 포탄은 건물 내부의 캐비닛과 진열장을 모조리 박살냈다.
▲ 총대주교 사원 내부의 깨진 창문과 진열대. 사원에 있던 많은 보석과 성물들이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거나 건물 밖으로 날아갔다.
▲ 총대주교 사원의 성물들이 전시되어 있던 진열대가 박살난 모습.
▲ 총대주교 사원 4번 방에 있던 11세기 므스티슬라프(Mstislav) 복음서가 담긴 벽면의 케이스가 박살 나 있다. 복음서는 벽돌가루로 뒤덮여 구겨지고 찢어져 있었다.
▲ 포격을 받은 흔적이 역력한 12사도 대성당(Church of the Twelve Apostles)의 외관.
▲ 12사도 대성당의 내부에 있는 제단이 파괴된 모습.
▲ 12사도 대성당의 남쪽 창. 창문 아래에 포탄이 뚫고 들어온 구멍이 나있다.
▲ 알렉시예프스카야 성당(Alekseyevskaya church)의 외관에 포탄 자국이 남아있는 모습.
▲ 대주교의 거처인 추도프 수도원도 포격을 피하지 못하고 파괴된 모습.
▲ 추도프 수도원의 기도실 구역의 창문과 벽이 박살난 모습.
▲ 포격이 끝난 후 성모승천 대성당(Cathedral of the Dormition). 중앙의 돔에 포탄 구멍이 뚫려있다.
▲ 사진 중앙에 있는 베클레미셰프스카야 타워(Beklemishevskaya Tower)의 46.2m에 이르는 꼭대기 부분이 포탄에 박살난 모습. 탑은 1년 후 복원되었으며, 1973년에 지붕도 동판으로 교체되었다.
크렘린의 비극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어수선한 틈을 탄 1918년 1월, 총대주교 사원에 도둑이 침입해 현재가치로 약 9천만 달러(한화 약 1146억 원)에 달하는 성물들을 훔쳐갔다. 도둑들은 2주 후에 체포되었지만 성물은 많은 수가 회수되지 않고 행방불명이 되었다. 이후 1960년대 말 도난당한 성물 중 두 점이 소더비 경매에 출품되며 세상에 나온 사례로 볼 때, 지금도 누군가 은밀히 소장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 1918년 도난당한 총대주교 사원의 보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