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화천 ‘파로호 기념비’ 제막식 순간

파로호 기념비의 역사성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 산 20-2번지에 있는 파로호 기념비는 한국전쟁 당시 용문산 전투에서 연합군이 중공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것을 전적하는 기념비이다.

 

즉 2021년 현재까지 66년을 지속한 세월의 무게와 이름이 가진 독립성과 기념비적인 전사의 상징성으로 볼 때 '원래 명칭'이라는 지위는 파로호(破虜湖)에게 주어지는 것이 맞다. 1
▲ 현재의 파로호비 ©화천군


호수의 명칭은 1944년 10월, 일제시대에 댐 완공 후 댐은 ‘대명제(大䳟堤)‘ 호수는 ‘대명호(大䳟湖)로 부르다가 독립 이후에는 이름 없이 ‘화천저수지’로 불렀다. 이후 1955년 11월 18일, 파로호 명명식을 가지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 원래의 명칭인 ‘대붕호(大鵬湖)로 돌아가자는 일부의 주장이 있지만, 존재하지 않던 호수가 댐 건설과 함께 인공적으로 생겨난 것이어서 대붕호라는 것은 애초에 없었다. 일본이 지은 대명제라는 명칭도 불과 10개월 정도만 불린 이름이다. 이후 이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화천저수지’로만 통한 것이 10년 정도.

 

즉 2021년 현재까지 66년을 지속한 세월의 무게와 이름이 가진 독립성과 기념비적인 전사의 상징성으로 볼 때 ‘원래 명칭’이라는 지위는 파로호(破虜湖)에게 주어지는 것이 맞다.

 

아래는 1955년, 당시 명명식 순간을 기록한 두 개의 기사이다.

 

파로호 어제 명명식 (조선일보 1955.11.19)

– 파로호 어제 명명식
– 이 대통령 임석(臨席) 밑에 성대히 거행

 

1951년 5월, 제6사단 전장병들이 중공군 3개군을 무찌르고 화천저수지와 발전소를 수복한 기록을 길이 후세에 남기고 당시의 장병들의 노고와 전몰장병의 유훈을 길이 빛내고자 이 대통령은 화천저수지를 ‘파로호(破虜湖)라고 명명하였다.

 

그리고 대통령 자신의 친필로 아로새긴 파로호 기념비 제막식이 18일 하오 1시 40분 구만리발전소(화천발전소) 뒤 마루턱, 호수 일대를 바라다볼 수 있는 곳에서 성대히 거행되었다.

 

이 대통령 내외분을 비롯하여 이(李)민의원의장, 이(李)연합참모본부총장, 정(丁)육군참모총장, 백(白)제1군사령관 그리고 당시의 용사 김용학 중위의 5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 이날의 제막식에서는 21발의 예포로 대통령에게 대한 경례를 끝내자 약사(略史)보고에 이어 대통령에 의하여 제막이 되었다.

 

즉 2021년 현재까지 66년을 지속한 세월의 무게와 이름이 가진 독립성과 기념비적인 전사의 상징성으로 볼 때 '원래 명칭'이라는 지위는 파로호(破虜湖)에게 주어지는 것이 맞다. 3


제막을 하고 난 이 대통령은 역전의 용사 6명들과 뜨거운 악수를 한 다음,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라 하겠다. 1950년 6월 우리를 바닷속에 몰아넣으려고 한 북한 괴뢰는 남침을 하였지만 이곳에서 2만여 명의 중공군을 우리 군인들이 화천호수 물속에 집어넣는 데 성공하였다.”

 

“나라의 역사가 없는 국민은 세계에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적인 이와 같은 것을 널리 알려야 하고 이밖에도 여러 이름난 격전터에 비를 세워 보존하여 목숨 바쳐 싸운 겨레의 기백을 후세에 남기려 한다.”는 요지의 훈시를 하였다.

 

이어 기념비를 그린 그림을 대통령에게 기념으로 증정하고 시 낭독으로써 이날의 기념비 제막식을 마쳤다. 한편 이 대통령은 곧이어 파로호 내의 별장을 거쳐 하오 늦게 귀경하였다.


*이(李)민의원의장: 이기붕

이(李)연합참모본부총장: 이형근
정(丁)육군참모총장: 정일권
백(白)제1군사령관: 백선엽

 

오랑캐 무찌른 파로호 (동아일보 1955.11.20)

– 오랑캐 무찌른 파로호
– 18일 명명 기념탑 제막식 성대


이 대통령은 이번 주변 40여 리에 달하는 당지 화천발전소 저수지를 ‘파로호’라고 명명. 18일 저수지 호반(湖畔)에서는 이 대통령 부처를 비롯하여 육군 고위장성 다수 참석 아래 명명을 기념하여 보병 제6사단 장병들이 건립한 ‘파로호명명기념탑(破虜湖命名記念塔)의 제막식이 성대히 거행되었다.

 

즉 2021년 현재까지 66년을 지속한 세월의 무게와 이름이 가진 독립성과 기념비적인 전사의 상징성으로 볼 때 '원래 명칭'이라는 지위는 파로호(破虜湖)에게 주어지는 것이 맞다. 5


그런데 ‘파로호’라는 뜻은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는 것인데 이는 전선에 포화가 치열하던 지난 51년 5월에 보병 제6사단(당시 사단장 장도영 중장) 장병들이 3개 군단 병력에 달하는 중공군과 대결, 용전 끝에 이를 격파하고 적 사살 21428명, 포로 2544명의 대승을 올렸음을 기념하는 동시에 국토방위의 굳은 결의를 선언하는 의의를 포함한 것이라고 한다.

 

이날 식에서 테이프를 끊어 기념탑을 제막한 후 이 대통령은 도열한 장병들에게 “1950년 6월 25일 공산군들은 우리를 바다에 다 몰아넣겠다고 호언하였으나 그들은 이곳에서 그들 스스로가 호수 속에 가라앉는 운명을 자초하였으니 이곳은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 영광스러운 한 점을 차지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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