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런던 사진관이 촬영한 당대의 유명인사들
‘다우니 형제(Downey brothers)’로 사진 역사에 기록된 윌리엄 다우니(William Downey, 1829~1915)와 다니엘 다우니(Daniel Downey, 1831~1881)는 1860년경, 잉글랜드 북동부 사우스실즈(South Shields)에 사진관을 차리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상업사진의 초창기에 눈에 띄는 실력을 보였던 다우니 형제는 1862년에 빅토리아 여왕이 하틀리 탄광사고(Hartley Colliery disaster)의 기록을 의뢰하면서 ‘여왕의 사진사(Queen’s Photographer)’로 유명해졌다.
▲ 다우니 사진관의 왕실 조달 허가증(Royal warrant of appointment)
이후 형제들은 런던으로 이주하여 영국 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왕실 사진은 물론 귀족, 국회의원, 연예인들의 사진을 남겼다.
아래는 19세기 다우니 사진관(W. & D. Downey)에서 촬영된 당대를 주름잡았던 유명인사들이다.
▲ 황후 복장을 한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 1844~1923). 프랑스의 연극배우로 19세기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로 명성을 떨쳤다.
▲ 밀리센트 포셋(Millicent Fawcett, 1847~1929). 여성인권운동가로 1918년에 30세 이상 여성의 참정권을 이끌어낸 인물.
▲ 조지 듀모리에(George du Maurier, 1834~1896). 아슈케나지 유대인 캐릭터인 ‘스벤갈리(Svengali)’를 만들어낸 프랑스계 영국 만화가이자 소설가로 사망 당시 47,555파운드를 유산으로 남길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2022년 현재가치로 700만 파운드(한화 약 113억 원)에 달한다.
▲ 1887년, 빅토리아 영국 여왕의 즉위 50주년을 기념하는 골든 주빌리(Golden Jubilee)에 영국을 방문한 영국령 인도 쿠치 베하르 왕국(Cooch Behar)의 마하라니(왕비) 수니티 데비(Suniti Devi Sen, 1864~1932).
수니티 데비는 여성인권운동가이자 교육가였으며, 오늘날 인도의 여학교인 수니티 아카데미(Suniti Academy)가 그녀의 이름을 딴 곳이다.
▲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로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영국 신사‘의 이미지로 널리 알려졌다.
▲ 영국의 화가 프레더릭 레이턴 경(Frederic Leighton, 1830~1896). 영국 역사상 화가로는 처음으로 세습할 수 있는 남작 작위를 받았다.
▲ 토머스 헨리 헉슬리(Thomas Henry Huxley, 1825~1895). 영국의 생물학자로 당대 진화론이 불러일으키는 논쟁을 피하지 않고 적극 맞서면서 ‘다윈의 불독(Darwin’s bulldog)’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 데임 매지 켄달(Dame Madge Kendal, 1848~1935). 당대 영국의 유명한 배우이자 연극감독이었다.
▲ 에이다 레한(Ada Rehan, 1859~1916). 미국의 여배우로 유럽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으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여성들에게 모방되고 유행될 정도였다.
▲ 윌슨 바렛(Wilson Barrett, 1846~1904). 영국의 배우이자 극작가로 사진 속에서는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의 절친인 머큐시오(Mercutio)로 분장하고 있다.
▲ 안톤 루빈스타인(Anton Rubinstein, 1829~1894). 러시아의 천재 피아니스트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설립한 인물이며 차이코프스키의 스승이다.
▲ 엠마 임스(Emma Eames, 1865~1952). 미국의 소프라노 가수로 1889년 파리 오페라에서 시연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히로인 줄리엣으로 데뷔했다.
▲ 윌리엄 조지 암스트롱((William George Armstrong, 1st Baron Armstrong, 1810~1900). 영국의 발명가로 암스트롱 포(Armstrong Gun)의 개발로 유명하다.
▲ 찰스 베레스포드 경(Lord Charles Beresford, 1846~1919). 영국의 제독이자 국회의원.
▲ 크리스토퍼 티스데일(Christopher Teesdale, 1833~1893).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으로 크림전쟁에 참전하여 맹활약했으며, 이때의 공적으로 빅토리아 훈장(Victoria Cross)을 수여받았다. 이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태생으로는 최초의 수훈이었다.
▲ 앨저넌 보스윅(Algernon Borthwick, 1830~1908). 영국의 보수 정치인이자 언론인으로 모닝 포스트(The Morning Post)의 소유주였다. 모닝 포스트는 1937년 데일리 텔레그래프(The Daily Telegraph)와 합병되었다.
▲ 마이클 데이빗(Michael Davitt, 1846~1906). 아일랜드 공화당의 운동가이자 국회의원.
▲ 브렛 하트(Bret Harte, 1836~1902). 미국에서 크게 성공한 작가였지만 유럽으로 이주 후 24년을 살았으며 영국에 묻혔다.
▲ 윔블던 여자단식을 5회 우승한 샬롯 도드(Charlotte Dod, 1871~1960). 15세의 나이로 첫 우승을 획득하면서 현재까지도 역대 최연소 챔피언으로 남아있다.
▲ 세실 프랜시스 알렉산더(Cecil Frances Alexander, 1818~1895). 시인이자 찬송가 작곡가.
▲ 메리 준(Mary Jeune, 1845~1931). 1910년부터 1927년까지 런던 시의회 의원을 역임하였으며 자선가로 활동했다.
▲ 빅토리아 여왕의 차남 알프레트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Alfred Herzog von Sachsen-Coburg-Gotha, 1844~1900)의 부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Marija Alexandrowna, 1853~1920).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Alexander II, 1818~1881)의 딸이다.
▲ 빅토리아 여왕의 장남 웨일스 공 앨버트 에드워드. 60세에 에드워드 7세(Edward VII, 1841~1910)로 즉위해 9년간 통치했다.
▲ 웨일스 공작부인(Princess of Wales, 1844~1925). 1863년에 웨일스 공 앨버트 에드워드와 결혼하여 조지 5세(George V)의 어머니가 되었다.
▲ 코넛과 스트래선 공작 아서(Prince Arthur, Duke of Connaught and Strathearn, 1850~1942). 빅토리아 여왕의 3남으로 제10대 캐나다 총독을 지냈다.
▲ 릴리 랭트리(Lillie Langtry, 1853~1929). 영국의 연극배우이자 최고의 미인으로 칭송받았으며, 에드워드 7세의 정부로 알려졌다.
▲ 클래런스와 에이번데일 공작 앨버트 빅터(Albert Victor, Duke of Clarence and Avondale, 1864~1892). 에드워드 7세의 장남으로 부친이 즉위하면 왕세자가 될 인물이었으나 28세 생일 직후 폐렴으로 사망했다.
▲ 에드워드 7세 영국 국왕의 장녀 루이즈 공주(Louise, Princess Royal, 1867~1931)가 남편 제1대 파이프 공작 알렉산더 더프(Alexander Duff, 1st Duke of Fife, 1849~1912)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에드워드 7세의 딸 빅토리아 공주(Prinsesse Victoria, 1868~1935)와 모드 공주(Prinsesse Maud, 1869~1938). 모드 공주는 훗날 노르웨이의 왕비가 되었지만 빅토리아 공주는 독신으로 살았다.
▲ 헬레나 공주(Helena Augusta Victoria, 1846~1923). 빅토리아 여왕의 셋째 딸이자 다섯 번째 자녀였다.
▲ 조지 5세(George V, 1865~1936). 에드워드 7세의 둘째 아들이었으나 형 앨버트 빅터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왕위 계승 서열 2위가 되었고 부친의 뒤를 이어 1910년 즉위하였다.
▲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Nikolai II, 1868~1918). 조지 5세와 매우 닮은 것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