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1958-1959 Autumn/Winter 패션쇼의 의상

세계 제2차 대전 직후, 프랑스 파리는 물자가 모자란 와중에도 인형을 이용해 패션쇼를 재개하며 ‘패션의 성지‘라는 칭호가 무색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 관련 글: 1945년, 전쟁 직후 파리의 인형 패션쇼

 

1950년대에는 전쟁의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나 현대의상의 기조를 닦은 유명 디자이너들이 마음껏 재능을 펼치기 시작했다. 아래의 사진은 1958년 파리에서 소개된 패션컬렉션의 일부 모습을 다루고 있다.

 

세계 제2차 대전 직후, 프랑스 파리는 물자가 모자란 와중에도 인형을 이용해 패션쇼를 재개하며 '패션의 성지'라는 칭호가 무색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1
▲ 디자이너 기라로쉬(Guy Laroche, 1921~1989)가 디자인한 블루 그레이 드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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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쌀한 겨울 저녁을 위해 기라로쉬가 디자인한 우아한 앙상블(드레스+울코트). 그는 실용적인 옷을 디자인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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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르 가르뎅(Pierre Cardin, 1922~2020)이 축제행사를 위해 디자인한 청색 이브닝드레스로 분홍색 장미가 가슴에 배치되었고, 같은 색상의 새틴 버클슬리퍼로 색상을 맞추었다.

 

1950년, 자신만의 패션하우스를 설립한 피에르 가르뎅은 1954년에는 거품처럼 크게 부풀린 치마 모양의 ‘버블 스커트(Bubble skirt)’를 창조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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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르 가르뎅의 밝은 오렌지색 의상을 착용한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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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올 하우스의 코메디 프랑세즈(Comedie Francaise) 이브닝드레스를 착용한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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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올 하우스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1936~2008)의 오렌지 새틴 칵테일 드레스.

 

1957년, 21세의 나이에 디올 하우스의 수석 디자이너가 된 생 로랑은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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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9년, 이란의 로열 웨딩.

 

당시 파리에 유학 중이었던, 훗날 ‘이란의 마지막 왕비‘가 될 파라 팔레비(Farah Pahlavi)도 이 시기에 그를 알게 되면서 이란왕가의 결혼식 웨딩드레스를 생 로랑이 맡았던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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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넬의 제라늄 핑크 색상의 시폰 소재 댄스의상을 입은 모델. 드레이프(Drape: 천에 천을 걸치거나 주름을 잡는 것)된 몸통에 흔들리는 스타일의 3단 스커트가 배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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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위드(tweed) 소재의 샤넬 골드 카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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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 디자이너 피에르 발망(Pierre Balmain, 1914~1982)의 보라색 코트.

 

1955년, 피에르 발망은 패션업계에서 뛰어난 발자취를 남긴 사람에게 시상하는 ‘니만 마커스 패션 어워드(Neiman Marcus Fashion Award)’를 수상하며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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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한 피에르 발망은 마를렌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캐서린 헵번(Katharine Hepburn)과 같은 스타들의 옷을 디자인하는데만 그치지 않았고, 1968년 그르노블 동계올림픽 의상과 1975년 에어프랑스 최초의 여성조종사 유니폼을 제작하는 등 프랑스 패션역사를 디자인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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