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중부유럽의 풍경
짧은 세월 중부유럽의 강국으로 존재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Österreichisch-Ungarische Monarchie)은 1867년 5월 29일에 성립된 연합체였으며, 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1918년 10월 31일 사실상 해체되었고 1919년 9월 10일 생제르맹 조약으로 완전히 소멸되었다.
이후 헝가리 왕국,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을 비롯해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폴란드 제2공화국, 유고슬라비아 등이 세워졌다.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 체코 프라하를 지나는 블타바 강(Vltava)의 풍경. 길이 446km로 오늘날 체코에서 가장 긴 강이다.
▲ 프라하 중심부 블타바 강 유역의 오피스(Opyš) 언덕 위에 있는 프라하 성(Pražský hrad).
길이 570m, 너비 128m로 ‘세계에서 가장 큰 고대 성‘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1918년 이후 체코 대통령궁으로 사용됨에 따라 ‘세계에서 사람이 거주하는 가장 큰 성‘으로 알려져 있다.
▲ 프라하의 올드 타운 브리지 타워(Staroměstská Mostecká věž)의 모습. 1370년~1380년대에 세워진 고딕양식의 탑으로 문 아래를 지나는 다리와 함께 지어졌으며,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4세(Charles IV, 1316~1378)가 대관식 날 이 다리를 건너서 행진했다.
올드 타운 브리지 타워는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딕 건축물로 여겨지고 있다.
▲ 프라하의 화약탑(Prašná brána). 최초 1475년에 건축되었으나 1757년 프로이센의 공격으로 큰 손상을 입었다. 현재의 건물은 건축가 요제프 모커(Josef Mocker, 1835~1899)가 1878년~1886년 사이에 고딕 양식으로 수정하여 재건한 것으로, 위에 나온 올드 타운 브리지 타워가 모델이다.
65m의 높이로 지어졌으며, 186계단으로 이어진 전망대는 44m에 위치해있다. 사진은 재건 중인 시기의 화약탑의 모습을 담고 있다.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 폴란드 크라쿠프(Kraków) 전경.
▲ 폴란드 크라쿠프 시청의 탑이었던 라투슈초바 탑(Wieża Ratuszowa). 시청 건물은 1820년에 철거되었으며, 높이 70미터의 탑만 남겼다.
▲ 크라쿠프의 도미니코 수도원 예배당(klasztornego Ojców Dominikanów) 내부 모습. 크라쿠프는 로마-가톨릭 성당이 많은 ‘예배당의 도시‘로 유명하다.
▲ 크라쿠프에 위치한 삼위일체 성당(Bazylika Świętej Trójcy)의 브워지미에시 포토츠키(Włodzimierz Potocki, 1789~1812) 조각상.
그는 바르샤바 대공국(Grand Duchy of Warsaw)의 기마포병 장교로 크라쿠프 전투에 참전해 1812년 4월 8일, 2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조각상은 그의 아내가 덴마크 조각가 베르텔 토르발센(Bertel Thorvaldsen, 1770~1844)에게 의뢰해 성당에 헌정하였다.
▲ 크라쿠프의 비스와 강(Wisła, 비스툴라) 건너편에서 바라본 바벨 성(Wawel Castle).
9세기 초부터 유래한 유서 깊은 성으로 폴란드의 상징이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세계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축물이다.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의 자기엘로니안 대학교(Jagiellonian University)의 도서관이었던 콜리지움 마이우스(Collegium Maius).
1364년 카지미에시 3세(Kazimierz III, 1310~1370)가 설립한 크라쿠프 아카데미가 이 대학교의 전신이며, 19세기에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콜리지움 마이우스는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가 공부했던 곳으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 독일 뉘른베르크(Nürnberg) 전경.
▲ 마인강과 페그니츠강을 흐르는 뉘른베르크 운하.
▲ 뉘른베르크 펠러하우스(Pellerhaus)의 안마당.
17세기 초 마르틴 펠러(Martin Peller)라는 인물이 거주하기 위해 건축한 곳으로 2차 대전 뉘른베르크 폭격 때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후 남아있던 1층과 안마당을 토대로 현재는 재건되었다.
▲ 뉘른베르크의 고문의 탑. 중세 죄수들을 가두고 고문을 가하던 건물이었다.
▲ 뉘른베르크 광장의 아름다운 분수(Schöner Brunnen, 쇠너 브루넨)와 성모 성당(Frauenkirche).
높이 19m의 아름다운 분수는 건축가 하인리히 베하임(Heinrich Beheim, 1360~1403)이 1396년에 완성하였다. 뒤에 있는 성모 성당은 2차 대전 뉘른베르크 폭격 당시 거의 파괴되었으나 아름다운 분수는 콘크리트로 둘러싸 파괴되지 않았다.
▲ 벨기에 동남부 워털루(Waterloo, 바터를로).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의 마지막 전투인 워털루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수많은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왼쪽 멀리 1826년에 완공된 ‘사자의 언덕(Leeuw van Waterloo)’이 보인다.
▲ 워털루의 성 요셉 성당(Church of Saint Joseph). 18세기에 지어진 건물로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크게 파손되었으나, 1965년 워털루 전투 150주년을 맞아 영국의 지원하에 복구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1972년 재건되었다.
▲ 이탈리아 나폴리 산 마르티노 수도원(Certosa di San Martino)의 발코니에서 바라본 나폴리 풍경.
▲ 이탈리아 나폴리 근교 베수비오 산에 1880년에 6월 10일 개통된 케이블 철도시스템 푸니쿨라(Funicular)의 모습.
45마력의 증기엔진이 장착된 푸니쿨라가 설치되기 전까지 관광객들은 베수비오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도보나 당나귀, 현지인들이 드는 가마를 타고 등반해야 했다.
▲ 산 아래의 역(좌)과 산 정상에 세워진 역(우).
개통 당시 각각 ‘에트나(Etna)’와 ‘베수비오(Vesuvio)’로 명명된 열차 두대로 운행하였으나 나폴리에서 접근이 쉽지 않아 수익성이 떨어졌고, 관광객들을 태워서 돈을 벌던 현지인들이 수입이 줄어들자 역을 습격해 방화를 저지르고 차량을 협곡 아래로 떨어뜨리는 폭동을 일으키는 등 방해를 하기도 하였다.
▲ 에트나(좌)와 베수비오(우).
이후 1904년에는 비싼 증기기관 대신 저렴한 전기모터를 장착하며 운영에 숨통이 트이는 듯했으나 1906년 4월 7일과 8일의 화산 폭발로 잿더미 아래에 파묻혔다. 이후 1910년 다시 개장했으나 이듬해인 1911년 3월 12일 발생한 산사태로 다시 운영을 멈추었다. 이후 무난히 가동하다가 1944년 또 한 번 베수비오 화산이 분화하면서 지금까지 재건되지 않고있다.
▲ 스웨덴 베스테르예틀란드 주의 도시 트롤헤탄(Trollhättans kommun). 1832년 9월 26일 개통한 괴타 운하(Göta kanal)를 여객선이 지나고 있다.
▲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Oslo)의 전경.
1040년 얀슬로(Ánslo)라는 이름으로 처음 설립되었으며, 1624년 화재로 파괴된 후 근처로 옮겨 수도를 재건하면서 ‘크리스티아니아(Christiania)’로 명명하였다. 이후 1877년부터 1925년까지는 ‘크리스티아니아(Kristiania)’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여 사용하다가 ‘감레 오슬로(Gamle Oslo)’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던 옛 마을과 합병한 후 현재의 오슬로로 개칭하였다.
▲ 노르웨이 북부 노를란 주 토르게 섬에 위치한 바위산 토르가텐(Torghatten)의 자연 터널. 터널의 길이는 160m, 폭은 20m, 높이 35m이다.
▲ 노르웨이 서안 노르피오르(Nordfjord)에 위치한 호텔과 주민들.
▲ 노르웨이 뫼레오그롬스달 주(Møre og Romsdal)의 도로와 멀리 보이는 해발 1,550m 높이의 롬스달스호르네 산(Romsdalshornet).
▲ 노르웨이 최북단 노르카프(Nordkap)에서 본 백야의 태양.
▲ 노르카프(Nordkap)와 태양을 함께 찍은 사진.
307m 높이의 노르카프 곶은 유명한 관광명소로 1988년 곶의 꼭대기 고원에 관광객을 위한 센터가 건립되었으며, 현재는 매년 5월 14일부터 7월 31일까지 백야의 태양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