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풍경
아프리카 동부에 위치한 ‘탄자니아(United Republic of Tanzania)’는 영국으로부터 1961년 독립한 탕가니카와 1963년에 독립한 잔지바르가 통합하여 탄생한 국가이다. 그런 이유로 국가명 ‘Tanzania‘도 ‘Tan‘ganyika와 ‘Zan‘zibar의 앞 세 글자와 접미사 ‘ia‘가 합성되어 만들어졌다.
통합 이후 탄자니아는 ‘범아프리카주의(Pan-Africaism)’를 기치로 내걸고 사회주의를 선언한 뒤 은행과 수많은 기업들을 국유화했다. 이로 인해 70년대 이후의 경제는 침체일로를 겪다가 결국 시장경제를 채택하였다.
아래는 탄자니아 연합공화국이 출범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은 1972년의 모습이다.
▲ 탄자니아의 자연풍경.
▲ 탄자니아의 전통 가옥. 큰 직사각형 구조의 건물의 지붕은 초가로, 외벽은 대나무로 만들어졌다.
▲ 탄자니아 북부에 위치한 도시 탕가(Tanga)의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건물.
▲ 맹수를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오두막.
오늘날 ‘야생동물의 천국‘으로 불리는 탄자니아는 케냐와 함께 마사이마라 국립보호지역(Maasai Mara National Reserve)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곳을 세렝게티(Serengeti)라고 부르고 있다.
▲ 색상은 다르지만 비슷한 의상을 착용한 탄자니아 여성들.
▲ 도도마(Dodoma)의 교회. 도도마는 현재 공식적인 탄자니아의 수도이다.
2020년 기준 탄자니아의 기독교 인구는 63.1%이다.(2위 이슬람 34.1%)
▲ 탄자니아 주민들이 거리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Ware’라는 보드게임을 하고 있다.
▲ 한 백인 관광객 여성이 타조농장에서 먹이를 주고 있다.
▲ 탄자니아의 농부가 소중한 소와 송아지들을 돌보고 있다.
▲ 농부가 소의 젖을 짜기 전에 다리에 차이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다리를 묶고 있는 모습.
▲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 스위스 문화원의 탄자니아 학생들.
다르에스살람은 탄자니아 최대의 도시로 1964년 탕가니카와 잔지바르가 통합하기 전까지 탕가니카의 수도였으며 현재도 사실상 수도로써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 탄자니아의 수업 중인 교실. 칠판에 적힌 날짜를 통해 1972년 2월 8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석한 학생 수가 45명(남 29, 여 16)인데 44명으로 틀리게 적혀있다.
▲ 탄자니아 국경 근처에서 순찰 중인 로디지아(Rhodesia) 군인들.
로디지아는 1965년 11월 11일,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국가로 1979년까지 존재했으며 현재는 짐바브웨가 되었다.
▲ 탄자니아의 사이잘삼(Sisal) 재배지.
▲ 건조 중인 사이잘삼.
2013년 기준 전 세계 사이잘삼의 생산량은 281,000톤이며 브라질이 155,844톤으로 세계 최대 생산국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탄자니아가 34,875톤으로 전 세계 2위 생산국이다.
▲ 건조된 사이잘삼을 공장으로 수집하는 노동자.
▲ 사이잘삼을 가공하는 공장과 가공과정에서 나온 가루를 뒤집어쓴 노동자들.
사이잘삼은 멕시코 남부가 원산지이지만 세계 곳곳에 퍼져나갔으며 주로 밧줄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 빅토리아 호수(Lake Victoria)의 풍경. 아프리카에서 가장 넓은 호수로 탄자니아뿐만 아니라 우간다, 케냐와 국경을 공유하고 있으며 어업권과 영유권 분쟁이 잦은 곳이다.
▲ 빅토리아 호수 남부에 위치한 도시 므완자의 어촌마을 냐마즈구(Nyamazugu)의 어부들.
▲ 빅토리아 호수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어부들. 빅토리아 호수에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섬 중의 하나로 불리는 ‘미징고(Migingo)’가 있으며 호수를 둘러싼 국가의 어부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다.
■ 관련 글: 빅토리아 호수의 섬, 미징고(Migingo)
▲ 빅토리아 호수 인근의 가옥들.
▲ 빅토리아 호수 남쪽에 위치한 도시 므완자(Mwanza)에서 볼 수 있는 비스마르크 록(Bismarck Rock).
설악산의 흔들바위와 비슷한 균형 잡힌 바위 ‘밸런싱 락(Balancing rock)’이다.
▲ 비스마르크 록(Bismarck Rock)은 프로이센의 총리였던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1898)의 동상이 근처에 세워져있었던데서 유래되었다.
그의 동상은 1차 대전 이후 영국에 의해 철거되었지만 바위에 붙여진 이름은 현재까지 그대로 남게 되었다. 【사진: Paul Alma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