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소련 청소년 개척자캠프 ‘아르텍(Artek)’
1922년에서 1991년까지 소련에는 ‘블라디미르 레닌 전연방 개척자 위원회(Vladimir Lenin All-Union Pioneer Organization)’라는 단체가 존재했다.
이는 서구사회의 청소년 운동인 ‘스카우트(Scout)’와 비슷한 조직으로 9세~15세의 청소년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줄여서 ‘청소년 개척자(Young pioneers)’라고도 불렸다. 러시아어로는 ‘피오네르(пионе́р)’라고 칭하며, 7세~9세 사이의 어린이들이 가입하는 ‘작은 10월당(Little Octobrists)’에 이어 소련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거치는 공산당 입당의 두 번째 단계였다.
아래의 사진은 1971년, 크림반도 남부 구르주프(Gurzuf)의 청소년 개척자 캠프 ‘아르텍(Artek / Арте́к)’에 참가한 회원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 소련의 여러 지역에서 아르텍(Artek) 캠프에 온 청소년 개척자들이 입소식에서 행진을 하고 있다.
1923년 청소년 개척자의 회원은 75,000명으로 시작해 1924년 16만 명, 1940년 1390만 명, 1974년에는 2500만 명에 이르렀다. 규정상 가입은 선택적으로 되어 있었으나, 사실상 소련의 청소년들은 모두 개척자 위원회에 속해있었던 것.
▲ 아르텍(Artek) 캠프에 참가한 청소년 개척자들이 입소식을 하는 모습.
소련의 청소년들이 모두 개척자로 가입은 되어 있더라도 절차와 차등이 있었다. 3학년을 대상으로 한 1차 모집에서는 성적과 품행이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들어갔으며, 2차는 차등 순위자들이 들어갔다. 성적과 품행이 나쁜 경우는 이를 보충하기 위한 시간이 주어졌으며, 1년이 지난 4학년이 되어서야 가입할 수 있었다.
이처럼 가입을 하지 않거나 뒤늦게 가입한 ‘품행 불량자‘들은 애국적 소양이 부족한 ‘반동‘으로 취급되었다.
▲ 청소년 개척자 가입식은 소련 청소년들에게는 가장 영광스럽고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가입식에서 청소년들은 다음과 같은 선서를 하며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는 두번째 단계를 통과했다.
“나(이름)는 동무들 앞에서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소련 개척자 위원회의 대열에 합류하며, 위대한 레닌이 명령한 대로, 공산당의 가르침대로, 소련 개척자들의 법칙대로, 나의 조국을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며 살 것을 엄숙히 약속합니다.”
▲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에서 온 청소년 개척자들이 아르텍 캠프의 운동장에서 준비한 공연을 펼치는 모습.
아르텍은 소련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공산국가 어린이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이곳으로의 방문은 특권이었다. 1925년에서 1969년 사이에 아르텍 캠프는 70개국에서 온 13,000명 이상의 어린이들을 포함하여 30만 명의 어린이들을 유치했다.
▲ 캠프파이어를 하는 청소년 개척자들.
개척자 캠프는 무료로 운영되었으며, 방학 동안 소련 청소년들은 이곳에서 애국심을 길렀다. 1930년대에는 스탈린 우상화, 이후에는 소련의 단합과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할 미래세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의 모델로 제시되었다.
▲ 청소년 개척자가 분필로 세계평화를 상징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 크림반도 아르텍(Artek) 캠프의 기숙사 시설.
▲ 아르텍 캠프 기숙사의 발코니에 앉아있는 청소년 개척자들.
▲ 기숙사 앞의 신발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 침구를 정리하는 청소년 개척자들.
▲ 기숙사의 계단 통로.
▲ 캠프의 식당에서 세계 각지에서 온 청소년 개척자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 식사가 끝나고 차를 마시는 청소년 개척자들.
▲ 청소년 개척자들이 아르텍(Artek) 캠프의 도로를 빗자루로 청소하고 있다.
▲ 미국의 정치인 안젤라 데이비스(Angela Davis)의 연대호소 게시물에 서명하는 청소년 개척자들. 안젤라 데이비스는 1960년대 미국 공산당(Communist Party USA)의 지도자였다.
▲ 캠프의 강사로부터 교육을 받고 있는 청소년들.
▲ 휴일을 맞아 해변으로 가는 청소년 개척자들.
▲ 흑해 연안에서 일광욕을 하는 청소년 개척자들.
아르텍 캠프는 소련 전역에 있던 청소년 개척자 캠프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였고, 현재도 휴양지로 유명한 크림반도의 따뜻한 기후 때문에 일 년 내내 개척자 캠프가 운영되었다.
▲ 물놀이를 즐기는 청소년 개척자들.
▲ 피서객으로 가득한 얄타 제방 아래의 해변.
▲ 물놀이를 즐기는 청소년 개척자들의 사고를 대비하는 인명구조원.
▲ 멀리서 본 흑해 연안의 아르텍(Artek) 캠프 시설.
▲ 캠프의 청소년 개척자들이 조교와 함께 크림반도의 산을 오르고 있다.
▲ 캠프에 입소한 청소년 개척자들이 경례를 한 채로 크림반도의 거리를 행진하는 모습. 개척자 캠프의 모토는 ‘항상 준비!(Always Ready!)’였다.
▲ 얄타 제방을 따라 행군하는 아르텍(Artek) 캠프 청소년 개척자들.
▲ 얄타 제방의 피서객들 사이를 행진하는 청소년 개척자들.
▲ 얄타 제방을 행진하는 청소년 개척자들을 바라보는 사람들.
▲ 동독과 소련의 청소년 개척자들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 손에 들고 있는 병에는 바다로 던지기 위한 메시지가 들어있다.
▲ 세계로 보내는 메시지를 담은 병을 바다로 던지는 행사를 하는 모습.
▲ 작은 10월당, 청소년 개척자를 거친 소련 청소년들은 28세까지 회원을 두는 청년단체 콤소몰(Komsomol)에 가입하며 공산당원이 되기 위한 3단계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사진: Wilfried glienke】
▲ 소련 해체 이후 이곳은 우크라이나의 국제아동센터로 개칭 후 청소년 교육캠프로 운영되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에는 러시아연방 교육과학부 소속 아르텍 국제아동센터(International Children’s Center ‘Artek’)로 변경되었으며, 과거와 같은 사상 주입은 없어지고 청소년 교육과 재능계발을 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