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구한말(대한제국)의 모습 ③
▲ 임진강(臨津江) 철교 공사 중인 모습.
▲ 1909년 2월 3일, 순종의 서북순행(西北巡行) 당시 개성 만월대(滿月臺)를 방문한 뒤 내려오는 모습. 1907년 권좌를 양위받은 순종은 백성들에게 황제로서의 지위를 인식시키기 위해 1909년 1월 27일부터 2월 3일까지 평양을 비롯한 서북지방 순행에 나섰다.
당시 순종의 서북순행을 기념하기 위해 평양 만수대에는 ‘융희제행행기념비(隆熙帝幸行紀念碑)’가 세워지기도 하였다.(관련 글: 평양 만수대에 세워졌던 순종의 행차기념비)
한편, 이 사진은 ‘일본제국 조선사진첩’뿐만 아니라 ‘순종황제 서북순행 사진첩’에도 동일하게 수록(아래)되어 있다. 당시 서북순행의 모든 일정을 담고자 무라카미 텐신(村上天眞, 1867~)이 설립한 무라카미 사진점의 점원 2명과 사진사 3명이 동행하였는데, 이들 중에 오가와 가즈마사 사진점의 사진사들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순종황제 서북순행 사진첩’에 있는 동일한 사진.
▲ 개성 지역의 인삼밭(蔘園).
▲ 편급(片級)별로 구분한 수삼(水蔘).
▲ 4년근 인삼.
▲ 5년근 인삼.
▲ 평양의 벽라교(碧羅橋). 능라도(綾羅島)와 부벽루를 잇는 다리로, 능라도의 수원지에서 물을 끌어다 평양시내로 공급하는 대형 수도관이 부설되어 있어서 ‘평양 수도교(平壤水道橋)’라고도 불렸다. 오른쪽에 멀리 보이는 시설이 능라도 수원지의 모습이다.
▲ 능라도 수원지.
▲ 평양 모란대(牡丹臺) 일대의 전경. 오른쪽에 흐르는 강은 대동강이다.
▲ 평양근교 시골 농가의 모습.
▲ 대동강변에서 빨래하는 여인들.
▲ 멀리서 본 대동강의 모습.
▲ 당시 국내 3대 금광으로 알려진 운산금광(雲山金鑛) 전경.
▲ 평안남도 진남포항(鎭南浦港). 해방 후 북한은 ‘남포시’로 개칭하였으나, 대한민국 행정구역으로는 여전히 ‘진남포시’이다.
▲ 양강도 보천군 청림리 명화동(明化洞)의 계곡에 설치된 목재다리.
▲ 양강도 통남동(通南洞)에 있던 토장(土場). ‘토장’이란 통나무를 벤 목재를 모아놓는 야적장을 말한다.
▲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읍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인 통군정(統軍亭). 압록강 너머로 보이는 곳이 위화도(威化島)이다.
▲ 신의주의 기차역에 목재가 쌓여있는 모습. 강 너머로 보이는 곳은 중국 안동현(安東縣). 1965년 ‘단둥 시‘(丹東市)로 개칭되었다.
▲ 압록강에 목재로 뗏목을 만들어 띄워서 운송하는 광경.
▲ 얼어붙은 압록강.
이 사진은 ‘순종황제 서북순행 사진첩’에 수록된 압록강 결빙사진(아래)과 일치하는데, 위 사진에 나온 사람을 제외하고 자세히 보면 뒤의 얼음 모양이 똑같은 것을 알 수 있다.
▲ ‘순종황제 서북순행 사진첩’의 얼어붙은 압록강 사진.
같은 날짜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며,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은 동행한 사진사 중의 한 명으로 추정된다.
▲ 신의주 도강장(渡江場)의 모습. 뗏목을 타기 위해 대기하는 사람들과 짐을 옮겨주는 사공들로 분주한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