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평화를 가져온 1938년 뮌헨 협정(Munich Agreement)
1938년 9월 30일,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정상들은 뮌헨에 모여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Sudetenland)를 나치 독일에 할양하는 뮌헨 협정(Munich Agreement)을 체결했다.
이는 당시 군사, 경제적으로 부강해지던 독일이 영토에 대한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자 또다시 참혹한 전쟁을 피하고 싶었던 유럽의 강대국들이 평화를 구걸한 행태로, 오늘날 평화를 지키는 것은 강력한 힘이라는 교훈을 일깨워주는 사례로 꼽히고 있다.
▲ 독일로 떠나기 전 런던 공항의 영국 정치인들.
중앙에 네빌 체임벌린(Neville Chamberlain, 1869~1940) 영국 총리와 에드워드 프레더릭 린들리 우드(Edward Frederick Lindley Wood, 1881~1959) 영국 외무장관이 서있다.
▲ 독일행 영국항공(British Airways) 항공기에 탑승하는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
▲ 독일 뮌헨에 도착한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를 독일 외무장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Joachim von Ribbentrop, 1893~1946)가 맞이하고 있다.
▲ 슈츠슈타펠(Schutzstaffel)의 사열을 받으며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 독일 외무장관이 함께 걷고 있다. 가장 왼쪽의 제복을 입은 인물은 아돌프 와그너(Adolf Wagner, 1890~1944) 뮌헨-오버바이에른 대관구지휘자(Gauleiter of Gau Munich-Upper Bavaria).
▲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가 아돌프 히틀러와의 회담을 위해 공항을 떠나고 있다.
▲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과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 환한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는 네빌 체임벌린과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
▲ 뮌헨에 도착한 에두아르 달라디에(Édouard Daladier, 1884~1970) 프랑스 총리. 네빌 체임벌린을 맞은 인사들이 동일한 격식으로 그를 맞이하고 있다.
▲ 뮌헨 중앙역(München Hauptbahnhof)에 도착한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1883~1945) 이탈리아 총리를 직접 맞이하는 아돌프 히틀러.
▲ 뒤에는 나치 독일의 2인자 헤르만 괴링(Hermann Göring, 1893~1946)과 루돌프 헤스(Rudolf Heß, 1894~1987)가 따르고 있다.
▲ 뮌헨 중앙역 앞 거리를 걷는 아돌프 히틀러와 베니토 무솔리니.
▲ 뮌헨 중앙역을 떠나 회담장으로 향하는 베니토 무솔리니 이탈리아 총리와 루돌프 헤스 나치 부총통.
▲ 1938년 9월 30일, 회담이 열리는 총통의 전당(Führerbau)에 들어서는 베니토 무솔리니와 루돌프 헤스. 이곳에 있는 히틀러의 개인서재에서 역사적인 뮌헨 협정이 체결되었다.
▲ 회담장이었던 총통의 전당(Führerbau)을 나서는 히틀러.
▲ 회담을 끝낸 정상들이 총통의 전당(Führerbau)을 나서는 모습.
▲ 회담국들의 국기로 장식된 총통의 전당(Führerbau) 외관.
▲ 런던으로 돌아온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가 평화를 약속한 히틀러의 친필서명이 담긴 서약서를 의기양양하게 흔들고 있다.
이날 귀환한 네빌 체임벌린은 다음과 같은 연설로 영국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My good friends, for the second time in our history, a British Prime Minister has returned from Germany bringing peace with honour. I believe it is peace for our time. We thank you from the bottom of our hearts. Go home and get a nice quiet sleep.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역대 두 번째로 영국의 총리가 독일로부터 명예로운 평화를 가지고 귀환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시대의 평화라고 믿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귀가 후 편안히 주무시길 바랍니다.”
네빌 체임벌린 총리는 영독선언에 대해 ‘우리 시대의 평화(Peace for our time)’라고 자신 있게 규정했지만, 이를 환영하는 인파보다 3배나 많은 군중이 트라팔가 광장에서 뮌헨협정 반대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실제로 이 서약서가 쓸모없는 종이조각이 되는 데는 불과 6개월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