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이 담긴 ‘스포츠카드’

수집을 위한 목적으로 판매되는 카드 중 스포츠카드(Sports Card)는 그 역사도 매우 길고 희귀한 카드는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이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1909년 제작된 야구선수 호너스 와그너(Honus Wagner, 1874~1955)의 카드는 2021년 8월 6일, 경매에서 무려 $6,626,096(한화 약 79억 원)에 낙찰되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스포츠카드로 등극하기도 했다.

 

▲ 세계에서 가장 비싼 ‘호너스 와그너’카드

 

한편 공식적인 기록은 아니지만 미국프로농구 NBA 선수였던 마크 잭슨(Mark Jackson)의 카드는 ‘세계에서 가장 살벌한 스포츠카드’라고 불릴만하다.

 

▲ 문제의 ‘마크 잭슨’ 스포츠카드

 

1965년생인 마크 잭슨은 1987-88시즌부터 2003-04시즌까지 1296경기를 뛴 포인트가드로, NBA 레전드인 존 스탁턴(John Stockton)의 10년 연속 어시스트 1위를 저지한 것으로 유명하며, 총 어시스트 개수에서도 역대 5위에 올라있는 선수.

 

▲ 마크 잭슨의 현역시절

 

훌륭한 커리어를 보낸 선수의 카드가 무슨 이유로 이런 수식어를 달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정작 마크 잭슨 때문이 아니라 뒤쪽 관중석에 있는 두 남성 때문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관중석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배경에 불과하지만 이 두 관중은 특별하다.

 

▲ 관중석에 있는 두 남성

 

이들은 바로 1989년 8월 20일, 부모를 12게이지 산탄총(12Gauge Shotgun)으로 살해하며 미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메넨데즈 형제(Menendez Brothers)’이다.

 

사건 당시 라일(Lyle, 21)과 에릭(Erik, 18)은 부모와 함께 미국 LA 베벌리힐스의 부촌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이 살던 저택은 프린스, 마이클 잭슨, 엘튼 존이 거주하기도 했던 곳으로 올림픽 규격의 수영장과 테니스코트를 갖춘 호화저택이었다.

 

▲ 사건이 일어난 저택

 

범행 당일 LA 경찰은 한 청년이 911로 울면서 걸어온 전화를 받았고, 출동한 곳에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참혹한 두구의 시신이 있었다. 당시 형제는 영화를 보기 위해 외출한 상태였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부모님이 살해당한 것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어린 형제가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오열하자 경찰은 처음에는 두 사람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건 이후 이들의 돈 씀씀이가 너무 많은 것이 의심을 사기 시작했다.

 

▲ 메넨데즈 가족. 법정에서 잔혹한 현장사진이 공개되자 방청객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라일과 에릭은 부모의 유산과 생명보험금으로 롤렉스 시계, 포르셰, 명품 옷, 레스토랑 구입, 개인 테니스 코치 고용, 고급주택 임대, 그리고 문제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MSG)에서 열린 뉴욕 닉스의 코트사이드 좌석 티켓 등을 구입하며 흥청망청 돈을 써댔다.

 

이는 ‘최대한 태연하게 평상시처럼 행동해 의심을 받지 않으려는‘ 두 사람의 계획이었지만 ‘지나치게 태연했던‘ 태도는 이 사건에 형제가 연루되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경찰의 확신을 뒤집었다.

 

▲ 미남 형제들의 재판방청을 위해 새벽 4시부터 여성들이 줄을 섰다.

 

결국 수사선상에 오른 형제의 재판이 시작되었고 검찰은 형제가 정신과 의사에게 범행사실을 털어놓은 증거를 제시했다. 일반적으로 의사는 진료과정에서 알게 된 환자의 정보에 대해 비밀누설금지의무가 있어서 제보가 불법이지만, 대기실에 있던 다른 환자(의사의 지인이었다)가 이들의 대화를 엿듣고 경찰에 제보를 하게 된 것이었다.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 앞에서 형제는 ‘아버지가 우리를 폭행하고 성적으로 학대해 자기방어 차원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항변하며 대립했다.

 

▲ 여유로운 모습

 

결국 5년간의 긴 재판 끝에 두 사람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샌디에이고의 R.J 교도소(Richard J. Donovan Correctional Facility)에서 현재까지 복역하고 있다.

 

▲ R.J 교도소 전경

 

사실 이 ‘살벌한’ 카드를 발견한 것은 농구팬이 아닌 스티븐 제란스(Stephen Zerance)라는 범죄작가로, 그는 메넨데즈 형제 사건의 법정문서를 읽고 해당 시기의 사진과 비디오를 뒤져 형제의 흔적을 찾으려 했다.

 

아무리 찾아도 두 사람의 흔적이 없자 그는 마지막에 스포츠카드를 떠올렸고, 결국 매디슨 스퀘어가든의 코드사이드 좌석에서 형제의 모습을 찾아냈다.

 

▲ 수감 중 재판받는 메넨데즈 형제

 

사실 관중석의 남자들이 메넨데즈 형제라는 확증은 없었다. 또 카드가 1990-91시즌 카드인 만큼 시기가 맞지 않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해당카드가 1990-91시즌용으로 출시되었을 뿐, 사진은 1989-90시즌 매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촬영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범인들의 모습이 유력한 것이 정설이다. 당시 뉴욕 닉스는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1990년 3월 형제가 체포되기까지 28번의 홈경기를 치렀다.

 

▲ 최근의 메넨데즈 형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메넨데즈 형제의 모습이 담겼다는 소문이 퍼지자 10달러 미만에 거래되고 있었던 「마크 잭슨+메넨데즈 미개봉 카드」는 온라인 경매사이트인 이베이(eBay)에서 40~50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베이는 규정상 ‘살인이나 연쇄살인범과 관련된 제품은 판매할 수 없다‘고 되어있기 때문에 당시 몇몇 판매자의 상품은 판매금지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인물이 ‘공식적으로’ 메넨데즈 형제라는 발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규정이 엄격하게 적용되지는 않고 있다.

 

▲ 이베이의 마크 잭슨 스포츠카드 판매리스트

 

지금도 이베이에서는 이 카드의 설명에 ‘메넨데즈 형제’라는 문구를 함께 언급하며 판매되고 있지만 존속살해와 같은 불길한 사건이기 때문인지 더 이상 높은 가격은 형성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