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최악의 폭설 피해, ‘1972년 이란 폭설’

기네스북에 기록으로 남은 역사상 최악의 폭설 피해는 눈과 관련된 뉴스가 흔히 보도되는 유럽이나 미국 같은 지역이 아니었다.

 

중동의 이란은 그 위치 탓에 일 년 내내 온대기후 내지는 뜨거운 사막기후가 연상된다. 물론 루트 사막(Lut Desert)과 카비르 사막(Kavir Desert) 지대도 있지만, 한국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도 많고 특히 수도 테헤란은 뜨거운 여름과 혹독한 겨울로 유명하다.

 

중동의 이란은 그 위치 탓에 일 년 내내 온대기후 내지는 뜨거운 사막기후가 연상된다. 물론 루트 사막(Lut Desert)과 카비르 사막(Kavir Desert) 지대도 있지만, 한국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도 많고 특히 수도 테헤란은 뜨거운 여름과 혹독한 겨울로 유명하다. 1
▲ 이란 위치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이란에 역사상 최악의 폭설 피해가 발생했다.

 

이란을 덮친 폭설

 

역사적인 지진이나 해일, 폭설 같은 자연재해의 경과를 돌이켜보면 순간 발생한 피해로 인한 손실도 막대하지만, 재해 이후 대응이 늦어져 고립상태가 지속되면서 인명피해가 커지곤 한다.

 

바로 이란의 폭설 피해가 그런 경우였다.

 

중동의 이란은 그 위치 탓에 일 년 내내 온대기후 내지는 뜨거운 사막기후가 연상된다. 물론 루트 사막(Lut Desert)과 카비르 사막(Kavir Desert) 지대도 있지만, 한국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도 많고 특히 수도 테헤란은 뜨거운 여름과 혹독한 겨울로 유명하다. 3
▲ 1972년 이란 폭설


4년 전부터 혹독한 가뭄을 겪고 있던 이란은 1972년 2월 3일부터 2월 9일 사이에 걸쳐 남부와 중부, 북서부 지방에 평균 3m에 달하는 폭설이 내렸다. 특히 이란 남부에는 평균 8m, 최대 26m에 달하는 엄청난 강설량을 기록하며 200여 개의 마을이 완전히 눈에 파묻혔다.

 

그 중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남동쪽으로 550Km 떨어진 아르다칸(Ardakan)외곽에 위치한 2개의 마을로부터는 구조요청은 물론 어떠한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이 모두 실종(사망)되었기 때문이었다.

 

고립으로 더욱 커진 피해

 

대규모 피해는 폭설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2월 9일 이후로 눈은 그쳤지만 도로와 열차 등의 교통망은 완전히 끊어졌다. 이렇게 고립된 상태에서 급작스러운 기온 강하와 초겨울부터 돌고 있던 유행성독감으로 인해 고열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식수와 음식, 의약품들이 도달하지 못했던 것은 더욱 치명적이었다.

 

게다가 이란 정부는 예상을 아득히 넘어선 폭설 규모에 어떻게 구호 계획을 세워야 할지 감도 잡지 못하는 상태였다. 출동한 구조 대원들이 헬기를 타고 상공에서 바라본 피해 지역은 단지 새하얀 눈 밖에 보이지 않았다.

 

중동의 이란은 그 위치 탓에 일 년 내내 온대기후 내지는 뜨거운 사막기후가 연상된다. 물론 루트 사막(Lut Desert)과 카비르 사막(Kavir Desert) 지대도 있지만, 한국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도 많고 특히 수도 테헤란은 뜨거운 여름과 혹독한 겨울로 유명하다. 5
▲ 폭설로 인해 사라진 도로


당시 AP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피해 지역에 투입된 구조대원들이 눈 속에 2m 높이의 터널을 파낸 다음 마을로 진입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들이 이틀 동안 발견한 것은 겨우 18구의 얼어붙은 시신뿐이었다고 한다.

 

이후 2월 11일에 다시 폭설이 내리면서 부득이하게 막 시작된 구조도 중단되었다. 이에 구조대는 구조를 재개할때까지 피해자들이 버텨주기를 희망하며 피해지역 곳곳에 빵 2톤을 가져다 놓고 어쩔 수 없이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중동의 이란은 그 위치 탓에 일 년 내내 온대기후 내지는 뜨거운 사막기후가 연상된다. 물론 루트 사막(Lut Desert)과 카비르 사막(Kavir Desert) 지대도 있지만, 한국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도 많고 특히 수도 테헤란은 뜨거운 여름과 혹독한 겨울로 유명하다. 7
▲ 폭설에 파묻힌 마을


이들이 구조를 위해 파놓은 터널을 통해 몇몇 주민들이 극적으로 빠져나왔지만, 구조대원들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대부분의 주민들은 안타깝게 사망했다. 최종적으로 이때의 폭설로 인한 피해는 6000명의 사상자(사망 4000명)라는 참혹한 결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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