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미인대회와 다른 독특한 미인대회
대부분의 미인대회는 아름다운 미모와 몸매의 여성들이 ‘만일 제가 우승한다면 인류의 번영과 교류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라는 틀에 박힌 포부를 말하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최근에는 ‘외모 지상주의의 첨병’이라는 비판과 함께 한국에서는 TV 중계도 폐지되는 등, 구시대의 산물 취급을 받기도 하고 있지만 아래에 소개할 미인대회들은 기존의 대회와는 확연히 다르며 사람이 아닌 대회 자체에 그 의미를 두고 있는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고통을 알리는 미인대회 ‘미스 지뢰‘
노르웨이의 예술가 모르텐 트라비크(Morten Traavik)는 앙골라를 여행하던 중 20여 년 간의 오랜 내전동안 8만 명에 달하는 엄청난 수의 지뢰 피해자가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의 존재 자체가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은 채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 모르텐 트라비크(Morten Traavik)
이에 트라비크는 앙골라의 지뢰 피해자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미스 지뢰(Miss Landmine) 대회를 기획했다.
기존의 미인대회와 비교해보면 얼핏 놀랍고 끔찍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어서 처음에는 ‘변태스러운 대회’라는 이유로 앙골라 정부로부터 거부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트라비크는 이 대회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에는 완벽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 장애를 지닌 ‘미스 지뢰’ 참가자들
실제로 대회 개최 후 지뢰피해자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지뢰피해자 지원 네트워크‘가 결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대회 우승자인 미스 지뢰에게 최신형 보철 다리가 주어졌지만 앙골라 지뢰피해자 전체가 함께 우승한 셈이다.
‘미스 지뢰’ 대회에서 수영복 심사를 하는 이유는 기존 미인대회와는 사뭇 다르다. 미(美)를 강조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장애를 강조하고 피해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 목적.
▲ 2010년 대회 포스터
트라비크가 이런 대회를 기획할 수 있었던 것은 노르웨이에서는 미인대회가 ‘저질스러운 쇼’라는 인식이 많은 것과 기존의 미인대회를 혐오하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이후 ‘미스 지뢰’ 대회는 또 다른 지뢰 피해국인 캄보디아에서도 개최되었다.(캄보디아에도 6만 명이 넘는 지뢰 피해자가 있으며 25,000명의 다리 절단 수술을 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는 ‘미스 도덕’
한때 각종 유머 게시판에 ‘중동의 미인대회’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오던 시절이 있었다.
차도르를 둘러쓰고 눈만 내놓은 미인들(?)의 모습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 대회인데, 외부에서 노출을 최소한으로 하는 무슬림 여성들의 복장을 풍자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위와 같이 눈만 내놓고 심사하는 미인대회가 실제로 존재한다.
바로 ‘도덕적으로 아름다운 미인(Miss Beautiful Morals)‘을 뽑는 대회.
우승을 희망하는 15세~25세 사이의 참가자들은 날씬하거나 뚱뚱한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일한 이 미인대회의 심사위원들은 완벽한 몸매나 얼굴을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가진 내면의 가치를 심사하기 때문이다.
심사부문은 참가자가 지닌 무슬림으로서의 신념과 효심, 그리고 바른생활 태도로 쉽사리 확인이 불가능한 것들이다. 그렇다 보니 1~2주간 합숙하며 우승자를 뽑는 보통의 미인대회와는 달리 ‘미스 도덕’은 무려 3개월의 심사과정을 거치며 인성을 측정한다.
▲ 창립자 ‘카드라 알 무바라크(Khadra al Mubarak)’
우선 대회가 시작되면 200명의 예선 참가자는 10주간의 수업에 참석한 뒤 부모님에 대한 공경, 도덕적 삶에 대한 주제들을 놓고 문답 테스트를 끊임없이 받는다.
그리고 여성 심사위원과 함께 그들의 고향집으로 가서 하룻밤을 묵는 것이 테스트의 최종 과정. 심사위원은 마지막 하루 동안 참가자와 어머니가 실제로 어떻게 지내는지를 눈여겨보고 체크한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우승보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전통을 중요시하는 대회의 목적 때문에 참가한다. 부모에 대한 효심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참가자들끼리 합숙하며 생기는 유대감은 친자매 이상으로 깊어진다고 하며, 우승자 역시 우승보다도 자신의 도덕성과 부모에 대한 효심을 인정받았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기뻐한다고.
▲ 2012 미스 도덕, 마람 자키 알 사이프(Maram Zaki al-Saif)
‘미스 도덕’ 창립자인 카드라 알 무바라크(Khadra al Mubarak) 여사는 여성을 상품화하는 정형화된 미인대회에 반기를 들기 위해 이 대회를 만들었다고 하며, ‘젊은 여성들이 내면의 가치에 주목하고 영혼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대회의 목적’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 대회의 우승자는 현금 2,600달러와 다이아몬드 시계, 진주 목걸이 그리고 말레이시아 가족여행권을 받는다.
일을 잘해야 미인이지, ‘미스 나바호’
나바호(Navajo)족은 북아메리카 남서부인 뉴멕시코·애리조나·유타주(州) 등에 사는 인디언으로 아메리카 인디언 565개 부족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약 30만 명) 차지하는 부족이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힘이 강한 모계 조직으로, 남자는 밖에 나가 사냥을 하며 가정과 부락을 보호하는 임무를 하고 집안일을 비롯한 양과 염소 등을 키우는 일은 여인들이 도맡아 하였다.
▲ 미국 인디언 보호구역
한때 아메리카 대륙의 주인이었던 그들은 이제 쇠락하여 보호구역으로 밀려났지만 자신들의 부족을 ‘나바호 네이션(Navajo Nation)’이라는 자치국으로 부르고 있으며 ‘미스 나바호 네이션(Miss Navajo Nation)‘을 1952년부터 개최하고 있다.
미스 나바호 네이션은 역시나 전형적인 미인대회와는 다르다. 심사부문에는 기본적으로 양을 도살해서 가죽을 벗기는 시험이 있으며, 나바호 언어를 기본적으로 구사해야 한다.
▲ 과제를 수행하는 참가자들
그런 이유로 심사위원들의 모든 질문은 나바호어로 이루어지는데 문답 내용은 보통 아래와 같다.
– “양의 목은 자른 다음 어떻게 다룹니까?”
– “네, 알루미늄 호일로 싼 다음 불에 굽습니다.”
만약 질문의 답을 나바호어로 말하기 어려워 익숙한 영어로 답하는 순간 감점된다.
▲ 미스 나바호 2015-2016 수상자들
이 대회의 목적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나바호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이 어떤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지를 재정립하고자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참가자 대부분에게 있어 양을 도살하는 과정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부분이지만 나바호어를 말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과제라고 한다.
선출된 ‘미스 나바호 네이션’은 아파트를 상으로 받고, 나바호 네이션을 1년간 세계에 홍보하는 사절단의 역할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