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핸드폰이라는 오해

 

심심치 않게 ‘World’s First Mobile Phone(1922)’이라는 제목과 함께 온라인에 등장하는 단골 사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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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초의 휴대전화?


사진의 출처인 영국필름보관소 브리티시 파테(British Pathe)가 공개한 ‘이브의 무선(Eve’s Wireless)’이라는 동영상 속에는 두 여성이 박스 모양의 기기를 들고 음악을 듣거나 통화를 하는 등 마치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듯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동영상 중간 즈음에 등장하는 ‘Portable Wireless Phone‘이라는 명확한 문구는 에이 설마.. 하는 의심을 사라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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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rtable Wireless Phone’이라는 소개


이를 인용한 공신력있는 언론의 기사까지 더해지며 실제 휴대전화의 모습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실은 1922년에는 ‘Wireless Phone‘ 혹은 ‘Wireless Telephone‘이라는 단어는 ‘라디오‘를 지칭했다. 즉 영상 속의 여성들은 광석라디오(Crystal radio)를 사용하는 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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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과 웹사이트의 오보

 

용어의 사용이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인데, 비슷한 예로는 1880년대 미국에서 사용된 ‘Motocycle‘이라는 단어는 현대의 오토바이가 아니라 ‘자동차‘를 의미하는 단어였다. (관련 글: 세계 최초의 자동차 광고)

 

미국 상무부는 1922년 7월이 되어서야 ‘무선통신’과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라디오’라는 단어를 채택할 것을 권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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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 속의 기기와 비슷한 형태의 라디오

 

동영상 속에서 전화교환수처럼 보이는 여성도 실은 라디오를 통해 음악을 트는, 현대로 말하면 DJ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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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화교환수가 아니라 라디오를 통해 음악을 틀어주는 모습이다.


또, 소화전에 접지를 하고 우산을 안테나로 연결하는 것은 당시 외부에서 광석라디오를 사용하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이보다 12년이나 앞선 1910년 2월 20일 자 워싱턴포스트의 광고에서도 우산을 안테나로 사용하며 라디오를 듣는 남자 이미지가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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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석라디오를 사용하는 남자(1910년)

 

역사적 자료나 사진은 이처럼 우리에게 종종 단어트릭을 구사한다. 과거에 사용하던 단어에 대한 정보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현재 사용하는 단어에 대한 고정관념이 작용하면서 기술의 발전에 따른 용어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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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년, 세계 최초의 상용휴대폰 ‘모토로라 다이나택 8000X(Motorola DynaTAC 8000X)’

 

부모의 무덤 옆에 잠든 소년

 

감동을 주는 사진이 알고 보면 정치적인 목적을 위한 조작으로 밝혀지면서 실망을 안겨주는 사례가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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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함께 자는 소년(A Young Boy Sleeping With His Parents…)’ 이라는 문장이 적힌 위 사진은 ‘살해당한 부모를 그리워하는 시리아 소년‘​이라는 글과 함께 퍼져나가며 ‘#SYRIA(시리아)’라는 태그로 제3국에는 반전, 내전에 휘말린 시리아 국민들에게는 정부군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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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 보도된 2014년 11월, 국내 포털의 댓글 반응


최초 사진을 퍼뜨린 사람은 미국에 거주하는 한 무슬림(@americanbadu)으로, 자신의 X(구 트위터)에 ‘이 아이의 부모는 시리아 아사드 정권에 의해 살해당했다‘라는 코멘트까지 곁들였다.

 

하지만 사실 이 사진은 사우디아라비아 예술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압둘 아지즈 알 오타이비(Abdul Aziz al-Otaibi)라는 사진작가의 작품으로 드러났다. 사진 속의 아이는 그의 조카이며, 촬영지도 시리아가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서부의 얀부(Yanbu)로 전해졌다.

 

작가에 따르면, 이 작품을 통해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이 영원함‘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 상관 없는 ‘시리아’라는 배경을 누군가 의도적으로 넣으면서 정치적인 사진으로 변모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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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는 자신의 말을 입증하기 위해 촬영 당시 조카의 사진을 공개했다.


사랑을 담은 자신의 작품이 대중의 분노를 일으킬 목적으로 퍼져나가자 압둘 아지즈 알 오타이비는 크게 당황했고, 원작자인 자신에게는 확인조차 없이 보도하는 언론에도 큰 충격을 받았다.

 

곧바로 항의한 그에게 조작을 한 사람은 “왜 잠자코 있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는 겁니까? 시리아라고 하면 당신에게 신의 보상이 있을 텐데“라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왔다고 한다.

 

결국 공방 끝에 문제의 게시물과 코멘트는 삭제되었지만 사진은 이미 선동의 도구로 쓰인 후였고, 선동된 사람들이 정정된 사실을 접했을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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