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 [48] 진옥(眞玉, 기생)
진옥이라 하면 의주 방면에서 유명한 기생이라.
가무도 능통하고 성질도 온순하며 재조는 본래 기생으로 타고났는지 다른 것은 알지 못하여도 소리와 춤에는 문일지십하는 힘이 있으며, 어여쁘고 자태는 없을지라도 보기에 귀인성스러운 것이 진옥의 특별한 점이라.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에 부자 남편 한 사람을 얻어 재미있고 요족하게 지내더니 팔자가 그뿐인지 사나이는 아편과 주사침에 가산을 탕진하고 하릴없는 지경을 당하매, 진옥이도 하릴없이 작년부터 다시 기생으로 투족하니 진옥의 팔자는 기박하다 하겠으나 이삼 년간 광채를 감추었던 진옥이 다시 의주에서 나타남을 화류계여서는 환영하였더라.
▲ 진옥(眞玉)
늙은 부모를 데리고 고생살이로 지내어 가면서도 항상 염두에 떠나지 아니하는 것은 전일 남편이 되었던 사람의 신세를 위하여 은근히 축원함이라.
지금의 방년은 18세이니 여자의 일생 중 꽃으로 비교하면 봉오리가 벌어지고자 하는 시절인데 굳센 바람과 모진 비에 유린을 받는 것은 진옥을 위하여 가련한 일이로다.
【매일신보 1914.03.27】
– 재조(才操): 재주. 무엇을 잘하는 소질과 타고난 슬기
– 문일지십(聞一知十): 하나를 듣고 열 가지를 미루어 안다는 뜻
– 귀인성(貴人性): 신분이나 지위가 높고 귀하게 될 타고난 바탕이나 성질
– 요족하다(饒足하다): 살림이 넉넉하다.
– 주사침: 아편을 정제한 ‘모루히네(모르핀)’를 의미하는 것으로 중독자는 ‘자신귀'(刺身鬼·모르핀 중독자)로 칭했다. 자신귀들은 가산을 탕진하고 모루히네를 맞기 위해 범죄자나 구걸인으로 전락했다.
– 할 일 없는: 현재도 ‘하릴없는’과 ‘할 일 없는’이 혼동되는 경우가 많은데 당시에도 혼용된 것 같다. 본문에서 쓰인 용도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대책 없는’의 뜻을 담고 있으므로 ‘하릴없는’ 이 정확한 사용이다.
– 투족(投足): 발을 내디딤. 업계에 들어섬
– 기박(奇薄): 팔자, 운수 따위가 사납고 복이 없음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