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 [55] 비연(飛鷰, 기생)
양춘삼월 호시절에, 남남쌍쌍 날아드니 힐지항지 비연이로다.
그 기생은 평양 사창동에 사는데 지금 나이 15세라.
여덟 살에 어느 여학교에 입학하여 삼 년 동안을 공부하다가 열한 살에 기생서재에 입학하여 가무를 배웠는데 춤은 승무, 입무, 항장무를 다 잘하고 소리는 시조, 가사, 노래, 잡가를 다 하는 중에 놀량(놀량사거리)을 특별히 잘하여 연주회에 한 번씩 나설 때에 인간행락이 모두 그 가운데 나타나는도다.
얼굴은 동글똥똥하고 몸은 아래위가 출무상하니 한편으로 보면 여염집 부녀 같더라.
비연의 성질이 유순하여 누구를 대하든지 신구면목을 일반으로 교제하니, 강산의 외입장이가 한번 데리고 놀만하도다.
그러나 비연의 가정생활 상태가 정숙하여 일동일정이 모두 법도에 합당하니, 점잖은 행색을 가지지 못하고는 출입을 못하는 모양이더라.
▲ 전비연(全飛鷰)
「삼오야 밝은 달이 반공중에 솟아올제, 어이한 뜬구름이 광명을 가리운다.
언제나 구름 걷어 밝은 빛 다시 볼까. 송지문 명하편을 길이 읊어 배회하로다」
하고 추풍감별곡을 일장 읊어 청아한 소리를 자아내니, 적적한 사창동이 적이 고요한 야색을 깨치는 듯. 듣는 자 뉘 아니 호탕하리오.
• “내 성은 전(全)이오, 이름은 비연이올시다. 이 사진으로 일반(모든) 신보 구독하시는 신사 제위께 문안드리게 하여 주시오.”
【매일신보 1914.04.09】
– 양춘삼월(陽春三月): 3월의 따뜻한 봄날
– 남남쌍쌍(男男雙雙): 수많은 남자 무리들
– 힐지항지(翓之𦐄之): 새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나는 모습. 이름 ‘비연(飛鷰)’에 빗댄 언어유희
– 기생서재(妓生書齋): 기생학교를 칭하는 말
– 인간행락(人間行樂): 인생의 즐거움
– 출무상: 고유어 형용사로 ‘출무성’으로도 쓰임. 굵거나 가는 데가 없이 위아래가 비슷하다는 의미
– 여염집(閭閻집): 평범한 백성의 살림집
– 신구면목(新舊面目): 새로운 손님과 아는 손님
– 일반: 한모양이나 마찬가지의 상태. 모두 똑같이
– 외입장이: 오입(誤入)질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 일동일정(一動一靜): 하나하나의 동정. 모든 동작
– 삼오야(三五夜): 음력 보름날 밤. ‘십오야’와 같은 말
– 반공중(半空中): 땅으로부터 그리 높지 아니한 허공
– 송지문(宋之問): 당나라의 시인(656?~712)
– 명하편(明河篇): 은하수를 노래한 시
–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 19세기 말에 만들어진 서정 가사 (원문 / 해석)
– 적이: 꽤 어지간한 정도로
– 야색(夜色): 고요한 밤의 경치
– 제위(諸位): ‘여러분’을 문어적으로 이르는 말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