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 [67] 국엽(菊葉, 기생)
해주군 해주면 남봉정(남본정) 5통 7호 김국엽(金菊葉), 일명 소춘(小春)은 방년이 20세라.
근본은 평안남도 평양부 태생으로 두 살에 부모를 쫓아 해주에 거생하는데, 어려서부터 천성이 혜민하고 자태가 은근하여 중양 아리따운 절기(중양절), 성긴 울타리에 한 포기의 국화가 아침 이슬을 머금은 듯 보는 사람마다 사랑하지 아니할 리 없더라.
7세부터 관기에 입적하고 기생서재에 입학하여 가무와 음률에 능하지 못한 것이 없고, 사람을 대하거나 물건을 접하는데 특별한 수단이 있는 고로 어느 회석에서든지 노소를 물론하고 취한 듯 미친 듯하여 만단의 근심과 수심을 다 잊어버리게 한다는 칭찬이 자자하더라.
▲ 김국엽(金菊葉) / 소춘(小春)
6~7년 풍상을 무릅쓰고 근고를 쌓은 결과로 재산이 적이 요족하여 6~7명 가족이 안락하게 생활하는 중, 부모에게 효성이 특별하다고 듣는 사람마다 감탄하더라.
국엽은 나이도 많고 몸도 약하여 백년낭군을 뫼시고 공기 좋은 곳, 정결한 두어간 초당에서 한 몸을 의탁하고자 하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라 하니, 짐짓 이른바 하이칼라로다.
【매일신보 1914.04.28】
– 남봉정: ‘남본정’의 오타. 광복 후에 황해도 해주시 태봉동으로 개편되었다.
– 거생(居生): 일정한 곳에 머물러 살아감
– 혜민(慧敏): 재빠르고 슬기로움
– 중양절(重陽節): 중국에서 유래한 명절(음력 9월 9일)로 현대 한국에서는 즐기지 않는다. 노란 국화가 만발하는 시기로 산에 올라가 국화전을 안주 삼아 국화주를 마시며 국화를 감상하는 날이다.
– 절기(節氣: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눈, 계절의 표준이 되는 것
– 성긴: 사이(공간)가 벌어진
– 관기(官妓): 관청에 속한 기생
– 입적(入籍): 어떤 곳에 적(병적, 당적, 학적 따위의 문서)을 올림
– 기생서재(妓生書齋): 기생학교를 칭하는 말
– 취한 듯 미친 듯: 이성을 잃은 상태. 여취여광(如醉如狂)을 한글로 풀어쓴 것
– 만단(萬端): 여러 가지. 온갖
– 풍상(風霜): 바람과 서리. 무수히 겪은 고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근고(勤苦): 마음과 몸을 다하며 애씀
– 적이: 꽤 어지간한 정도로. 적잖게
– 요족(饒足): 살림이 넉넉함
– 백년낭군(百年郎君): 백년가약을 한 남편
– 간: 공간의 구획이나 넓이를 나타내는 단위. 현대는 ‘칸’이 표준어
– 초당(草堂): 억새나 짚 따위로 지붕을 얹은 조그마한 집채
– 하이칼라(はいから): high collar. 서양식 유행을 따르던 멋쟁이를 이르던 말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