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 [80] 화연(花姸, 기생)
화연의 성은 김(金)이오, 방년은 15세이오.
집은 평양 계동(鷄洞)에 있는 수간초옥이라.
자태가 극히 얌전하고 심정이 역시 고요하여 여자다운 태도가 한번 보기에도 방불히 나타나더라.
화연은 8세부터 어느 여학교에 입학하여 4~5년 간을 공부할 때에 품행은 단정하고 학력은 우등됨으로 선생 제씨에게 무한한 칭찬을 들었지만 세상에 어기지 못할 것은 부모의 명령이오, 영욕을 따라 변하기 쉬운 것은 여자의 심정이라.
12~3세 되었을 때에 그 부모의 시킴과 동무 기생들의 유인함을 받아 학교에 가기는 졸연히 폐하고(갑자기 중퇴하고) 가무서재에 다니기를 시작하니,
▲ 김화연(金花姸)
그때에 화연이 공부하던 여학교 선생은 당시 교육계의 유지자라 화연의 기생되는 것을 극히 불가히 여겨 화연을 백반극력하여 기생 노릇을 면하고 학생 노릇을 시키고자 하나, 벌써 화류계 풍정 중에 몸을 들인 화연은 선생의 말을 듣지 않고 종래 기생 노릇을 하고자 하니, 선생은 그 할 수 없는 줄을 알고 화연의 장래를 위하여 애석한 생각을 이기지 못하여 낙루를 하였다 하니 그 인재의 쓸만할 것은 어차에 가지라. (‘여선생이 애석하게 우는 것을 보아 아까운 인재임을 알 수 있다’는 의미)
지금은 화류계의 재미를 깨달아 서그러진 베삔상(미인)이 되었더라.
▲ 일본 드라마, 벳핀상(べっぴんさん, 2016)
미묘한 안색에 은은히 내이는 교소의 태도는 장래 몇 사람의 간장을 녹이며, 섬섬한 옥수는 사랑하는 남자들의 항상 끌리는 물건이 되었더라.
【매일신보 1914.05.09】
– 계동(鷄洞): 평양 중구역에 있었던 행정구역. 닭골이라고 불렸다.
– 방불(髣髴): 생생히 떠오름
– 제씨(諸氏): 여러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
– 수간초옥(數間草屋): 몇 칸 안 되는 작은 초가
– 졸연(猝然): 갑작스럽게
– 폐하고(廢하고): 해 오던 일을 중도에 그만두고
– 가무서재: 노래와 춤을 배우는 학교. 기생서재와 같은 말
– 유지자(有志者): 좋은 일에 뜻이 있거나 명망이 있는 사람
– 백반극력(百般極力): 여러 가지 방법으로 힘을 쏟음. 백반보다는 보통 ‘백방(百方)’이 잘 쓰인다.
– 풍정(風情): 정서와 회포를 자아내는 풍치나 경치
– 종래: [부사] 끝내
– 낙루(落漏): 눈물을 흘림
– 어차에 가지라: 어차가지(於此可知). 이로써 알 수 있다는 뜻
– 서그러진: 마음이 너그럽고 서글서글하게 된
– 베삔상: 벳핀상(べっぴんさん). [속어] 미인(別嬪)
– 교소(嬌笑): 요염한 웃음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