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전화통화와 전화예절
역사상 최초의 전화통화로 남아있는 것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이 그의 조수인 토마스 A. 왓슨(Thomas Augustus Watson)을 그가 발명한 전화를 통해 호출한 것이었다.
“Mr. Watson, Come here. I want to see you.”
▲ 벨의 호출을 받고 달려간 왓슨을 묘사한 그림
이 짧은 통화를 통해 왓슨의 이름은 최초의 전화통화에 등장한 인물로 역사에 새겨졌다.
전화를 전화답게 만든 왓슨
하지만 왓슨은 단순히 위대한 발명가의 조수라는 이유로 덩달아 이름이 남은 것만은 아니었다.
당시 벨이 발명한 초기 전화는 통화수신 시에 벨이 울리지 않았다. 이것은 전화를 받으려면 수화기를 항상 귀에 대고 있거나, 약속된 시간에 전화 근처에 죽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에 왓슨은 통화가 수신되면 ‘벨이 울리는’ 아이디어를 고안해 냈다.
▲ 토마스 A. 왓슨(Thomas Augustus Watson, 1854~1934)
현대의 핸드폰이 완벽한 휴대성을 갖추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된 것처럼, 왓슨은 벨소리가 울리게 함으로써 전화에 묶여있지 않아도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해 준 셈이다.
게다가 왓슨은 통화가 끝나고 전화를 끊으면 정지신호를 보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떠올렸다. 만약 정지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전원을 끄지 않는 한 계속해서 ‘통화중’이 유지되기 때문에 다른 통화는 불가능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이처럼 전화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데에는 ‘조수’ 왓슨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여보세요’의 기원
미국인들에게 대중적인 전화인사는 “Hello”이다.
하지만 발명가 벨은 “ahoy(어이!)”를 초기의 전화인사로 선호했다. “Hello”는 1883년까지는 사용되지 않다가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 1847~1931)에 의해 대중화되었다.
▲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 1847~1922)
미국의 경우를 보면 한국은 ‘안녕하세요’ 혹은 ‘안녕’이 주로 사용되어야겠지만 어째서 “여보세요”가 더 선호될까. 사실 이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이 누구인지 미국처럼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조선에는 1882년 3월 처음으로 전화가 도입되어 테스트 통화를 한 기록이 있고, 1893년에는 궁내부(宮內府)에 전용선을 설치하기 위하여 일본으로부터 전화구입과 관련한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최초의 전화는 1896년 궁내부에 자석식 교환기가 설치된 것을 시초로 본다.
▲ 1933년의 전화교환수. 이 시기 카페와 요리집이 번창하면서 전화통화량은 급증했다.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전화가 사용된 것은 1898년 궁내부 주관으로 덕수궁에 전화시설을 마련하여 각 아문(衙門)은 물론, 인천에 있는 감리소(監理所)까지 전화를 개통하기 위해 궁중 전용으로 전화기 9대를 도입한 기록이 있다. 이후 1902년에 이르러 공중전화의 효시인 민간전화를 개통한 것이 한반도 전화개통의 역사이다.
즉 초기 전화기의 도입과 관련된 곳이 일본이었기에 ‘여기 보세요’를 뜻하는 일본어 전화인사말 ‘모시모시(もしもし)’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여보세요’가 기본적인 전화호칭으로 굳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 1937년, 조선의 인구 2300만 중 전화 가입자 수는 4만 9천여 명이었다. 이해 경성에서만 2억 7천만 회(274,382,653회)의 통화가 있었다. 한사람당 하루에 17통의 전화를 건 셈이었다.
이는 1936년의 사용량에 비하면 5% 줄어든 것이었는데, 전화사용량이 늘어나자 경성중앙전화국에서 사용한 횟수에 따라 전화요금을 책정하는 도수제(度數制)를 실시했기 때문이었다.
▲ “여보세요”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전화통화와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네~”, “안녕하세요”, “OOO입니다”, “잘 들리세요?”등이 전화인사로는 더 부드럽고 상황에 알맞을 것 같지만, 어린시절부터 전화호칭으로 “여보세요”를 교육받으면서 의미와 상관없이 수화기만 들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한국의 공손한 전화인사말로 주류를 이루고 있다.
참고문헌:
• 국제전화교환수 – 釜山日報 1930.10.07.
• 한사람이 하루동안 열일곱번 『모시모시』 – 每日申報 1938.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