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영국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잔지바르 – ‘역사상 가장 빨리 끝난 전쟁’
세계 전쟁사(史)에서 가장 빨리 끝난 전쟁은 개시 후 얼마나 소요되었을까.
바로 1896년 8월 27일에 시작된 영국 함대와 잔지바르 술탄국 사이에 벌어진, ‘영국-잔지바르 전쟁(Anglo-Zanzibar War)’이었다.
▲ 1896년, 궁전 쪽에서 본 잔지바르의 스톤 타운(Stone Town) 풍경
1896년 8월 25일, 영국의 지배력이 커지고 있는 것을 우려하던 잔지바르의 술탄 ‘하바드 빈 투와이니(Hamad bin Thuwaini)’가 갑작스럽게 서거하자, 그의 조카 ‘할리드 빈 바르가쉬(Khalid bin Barghash)’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 할리드 빈 바르가쉬(Khalid bin Barghash, 1874~1927)
자신들이 지지하는 세력을 옹위하려던 영국은 당황했고, 승인없이 궁전으로 들어간 할리드 빈 바르가쉬에게 즉각 왕위에서 물러날 것을 권고했다.
점점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고 있었지만 할리드 빈 바르가쉬는 힘들게 잡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전쟁까지 불사하는 고집을 부린다. 그는 2,800여 명의 군대를 전국에서 소집하고 군함까지 무장시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특히 지하의 무기고에서 200년 전에 사용하던 낡은 청동대포까지 꺼내들었다.
▲ 바다에서 본 스톤 타운의 궁전과 등대
영국군은 5척의 군함을 궁전과 마주 보고 있는 항구에 집결시키고 ‘1896년 8월 27일 9시‘를 최후통첩 시간으로 정한 뒤 무장해제와 궁전을 떠날 것을 요구했다.
잔지바르 측은 두려움 없이 군함 1척을 맞출정시켰는데, 이 군함은 영국 군함 2척의 일제 포격을 받고 전쟁 개시 고작 5분 후 침몰했다. 하지만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 포격을 계속할 정도로 투지만은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30분간에 걸쳐 영국의 무시무시한 포격이 궁전을 향해 이어졌다. 하지만 궁전의 게양대에는 여전히 잔지바르의 깃발이 휘날렸기에 영국해군제독은 포격을 멈추지 않았다.
▲ 1896년, 영국 신문에 게재된 스톤 타운 포격 삽화
백기를 내걸 게양대조차 완전히 파괴되고 잔지바르 쪽에서 인기척조차 들리지 않자 그제야 영국군은 이것을 ‘항복 싸인‘으로 받아들이고 포격을 중지시켰다. 이때 할리드 빈 바르가쉬는 이미 독일 영사관으로 급히 피신한 상태였다.
9시 2분 개전에서 9시 40분의 종전까지 걸린 시간은 ‘단 38분‘으로 인류사에 전무후무한 최단기간 전쟁으로 기록되었다.
잔지바르 측은 군인과 민간인 포함 약 570명이 사망하였고, 영국군은 달랑 부상자 1명이었다. 심지어 이 부상은 포격과 상관없이 영국 군함 내에서 넘어져서 다친 것으로, 사실상 전쟁이라기보다는 권력에 눈이 먼 술탄의 비현실적인 만용이 불러온 일방적인 살육이었다.
▲ 전쟁 직전의 스톤 타운
이후 잔지바르는 영국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고, 할리드 빈 바르가쉬는 10월 2일에 독일영사관을 탈출하여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에서 지내다 1916년에 독일 식민지를 점령한 영국군에 체포되어 케냐 몸바사(Mombasa)에서 1927년에 사망했다.
아래는 전쟁이 끝난 직후 촬영된 스톤 타운(Stone Town)의 잔지바르 궁전과 시내의 모습을 담고 있다.
▲ 전쟁의 여파로 부서진 선박들
▲ 여전히 포연이 자욱한 스톤 타운의 거리
▲ 처참하게 파괴된 술탄의 궁전(Sultan’s Palace)
▲ 영국 해군의 포탄이 떨어진 스톤 타운의 해안가
▲ 포격을 맞은 경이의 궁전(House of Wonders)과 등대
▲ 등대 주변의 부두. 포격으로 붕괴의 위험이 커진 등대는 철거되었다.
▲ 파괴된 술탄의 궁전(Sultan’s Palace) 입구
▲ 쑥대밭이 된 술탄의 궁전(Sultan’s Palace) 내부
▲ 폐허가 된 스톤 타운의 건물들
▲ 완전히 파괴된 모스크
▲ 측면에서 본 모스크. 포격으로 화재까지 발생한 모습이다. 잔지바르 측의 사망자는 대부분 포격으로 발생한 화재로 숨졌다.
▲ 다른 방향에서 본 경이의 궁전(House of Wonders). 잔지바르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곳으로 현재는 복원되어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 복원된 경이의 궁전(House of Wonders). 철거된 등대를 대신해 원래는 없던 시계탑이 건물에 추가되었다.(2010년)
▲ 노획한 잔지바르군의 대포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영국 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