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국기와 깃발들 ⑤

서인도 연방(1958~1962)

크고 작은 연방국가들 사이의 지역감정과 경제적 종속에 대한 의심이 연방의 단명을 재촉했다. 특히 서인도 연방 전체 인구(326만)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자메이카(166만)는 가장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1


영국령 서인도제도에서 성립되었다가 1962년 해체된 서인도 연방(West Indies Federation)의 국기. 서인도 제도 연맹이라고도 칭한다.

 

크고 작은 연방국가들 사이의 지역감정과 경제적 종속에 대한 의심이 연방의 단명을 재촉했다. 특히 서인도 연방 전체 인구(326만)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자메이카(166만)는 가장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자메이카는 풍부한 보크사이트 매장량으로 인한 경제적 이득을 연방에 빼앗기는 것을 싫어했고, 가장 큰 면적과 절반이 넘는 인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킹스턴(Kingston)이 아닌 트리니다드토바고의 차과라마스(Chaguaramas)가 서인도 연방의 수도로 채택된 것에 불만을 품었다. 결국 자메이카와 트리니다드토바고가 1962년에 독립하며 서인도 연방의회는 해산을 선언하였고, 서인도 연방 국기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중앙아메리카 연방공화국(1823~1838)

크고 작은 연방국가들 사이의 지역감정과 경제적 종속에 대한 의심이 연방의 단명을 재촉했다. 특히 서인도 연방 전체 인구(326만)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자메이카(166만)는 가장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3


중앙아메리카 연방공화국(República Federal de Centroamérica)은 과테말라,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코스타리카로 구성된 연방으로 미합중국을 모델로 삼아 연방공화국을 이루려 한 국가였다.

 

하지만 지역주의와 이념으로 인해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1838년 11월 5일에 연방 최초로 니카라과가 탈퇴를 선언하였다. 이후 1841년에는 엘살바도르가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최후를 고했다.

 

크고 작은 연방국가들 사이의 지역감정과 경제적 종속에 대한 의심이 연방의 단명을 재촉했다. 특히 서인도 연방 전체 인구(326만)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자메이카(166만)는 가장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5


위와 같이 오늘날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의 국기가 비슷비슷한 이유는 대부분 중앙아메리카 연방공화국기의 도안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1928~1994)

크고 작은 연방국가들 사이의 지역감정과 경제적 종속에 대한 의심이 연방의 단명을 재촉했다. 특히 서인도 연방 전체 인구(326만)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자메이카(166만)는 가장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7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옛 국기 ‘Oranje, Blanje, Blou(orange, white, blue)’의 모습이다.

 

바탕의 기본은 네덜란드 독립전쟁(Dutch War of Independence, 1568~1648)의 깃발에서 가져왔다. 작은 깃발들이 중앙에 있는 형태로 왼쪽부터 영국의 유니온 잭, 중앙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중부의 오라녜 자유국(Oranje-Vrijstaat), 오른쪽은 보어 공화국(Boererepubliek) 국기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신인 남아공 연맹(Union of South Africa) 시절인 1928~1961년까지 사용되었고, 공화국으로 독립을 하고도 1994년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이후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가 끝나자 이 깃발은 아파르트헤이트의 상징물로 지목되면서 총선을 일주일 앞둔 1994년 4월 20일에 공식적으로 폐기되었다.

 

하지만 수많은 남아공 흑인들의 혐오에도 불구하고 이 국기를 게양하는 것 자체는 ‘표현의 자유’로 인정받아 처벌받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2008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AFCON) 당시 주최국인 가나가 포스터에서 남아공의 국기로 무슨 이유인지 이 국기를 사용하면서 남아공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크고 작은 연방국가들 사이의 지역감정과 경제적 종속에 대한 의심이 연방의 단명을 재촉했다. 특히 서인도 연방 전체 인구(326만)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자메이카(166만)는 가장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9
▲ 2008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당시 논란이 된 남아공 국기

 

독일령(領) 동아프리카(1885~1919)

크고 작은 연방국가들 사이의 지역감정과 경제적 종속에 대한 의심이 연방의 단명을 재촉했다. 특히 서인도 연방 전체 인구(326만)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자메이카(166만)는 가장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11


독일령 동아프리카(Deutsch-Ostafrika)는 유럽에 의해 아프리카가 조각조각 나뉘어있던 제국주의 시절에 독일제국의 식민지 중 하나였다. 현재의 부룬디, 르완다, 탄자니아의 일부를 포함하며 면적은 현 독일의 2.7배에 달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제국의 패배로 발효된 베르사유 조약(Treaty of Versailles)으로 독일령 동아프리카는 분할되었고 각각 벨기에, 포르투갈, 영국이 전리품으로 가져가며 이 국기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벨기에령 콩고(1908~1960)

크고 작은 연방국가들 사이의 지역감정과 경제적 종속에 대한 의심이 연방의 단명을 재촉했다. 특히 서인도 연방 전체 인구(326만)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자메이카(166만)는 가장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13


1876년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Léopold II, 1835~1909)가 콩고의 부족들에게 주권을 이양받고 1885년 서아프리카 회의에서 사유지로 인정받음에 따라 성립된 콩고 독립국(
État indépendant du Congo)은 레오폴드 2세의 폭정과 자원수탈에 신음하게 된다.

 

결국 보다 못한 국제여론이 악화되면서 벨기에는 외교적으로 난처한 입장에 처해졌고, 결국 1908년에 레오폴드 2세가 벨기에 정부에 사유지를 양도하면서 식민지 벨기에령 콩고(Congo Belge)로 전환되었다. 이후 1960년 6월 30일에 콩고공화국(The Republic of the Congo)으로 독립하면서 이 국기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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