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이야기 (102) 1999년, 축구전쟁을 앞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1999년 10월 9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기를 든 축구팬들이 모여서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속에는 양국의 국기 뿐만 아니라 프로축구팀 FC 메탈루르흐 자포리자(우크라이나), FC 초르노모레츠 오데사(우크라이나), FC 디나모 민스크(벨라루스), FC 메탈리스트 하르키우(우크라이나)의 스카프를 든 모습도 보여서 벨라루스의 팬들도 찾아왔을 정도로 주목도가 높은 경기였음을 알 수 있다.
사진만 보면 상당히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펼쳐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 시기 러시아에서는 연일 테러가 발생하면서 4천 명의 경찰이 경기장 주변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 원정팬 수십 명은 모스크바 현지 팬들과 거리에서 싸움을 벌이다 체포당하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 10월 8일 자 소비에트 스포츠(Советского спорта) 헤드라인. 선수들의 이름과 함께 ‘러시아를 구해주세요!(спасай Россию!)’라는 문구가 크게 쓰여있다.
특히 이날 경기는 UEFA 유로 2000 예선 4그룹의 역사적인 최종전이었다.
그때까지 우크라이나는 단독 1위, 러시아는 프랑스에 득실차에서 앞선 2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홈에서 열린 1차전에서는 우크라이나가 3:2로 승리한 상황이었지만, 러시아 원정은 당연히 장담할 수 없었다.
▲ 최종전을 앞둔 순위표
같은 시각 3위로 밀린 강호 프랑스는 아이슬란드와의 일전을 앞두고 있었는데, 이 경기에서 승리하더라도 모스크바에서 승패가 갈린다면 2위로 플레이오프를 가야 하는 암담한 상황으로 몰리고 있었다.
그렇게 루즈니키 스타디움(Luzhniki Stadium)에서 포문을 연 모스크바 축구전쟁은 0:0의 팽팽한 살얼음을 걷던 중, 러시아의 발레리 카르핀(Valery Karpin)이 프리킥을 성공시키며 앞서 나갔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러시아의 유로 2000 참가가 확정되는 상황이었으나, 후반 88분 안드리 세브첸코(Andriy Shevchenko)가 극적인 프리킥을 성공시키며 기사회생했다. (동점골 영상)
▲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킨 안드리 세브첸코가 환호하고 있다.
결국 경기는 무승부로 끝나면서 아이슬란드에게 3:2로 승리한 프랑스가 1위, 탈락을 눈앞에 뒀던 우크라이나는 극적으로 플레이오프 티켓을 거머쥘 수 있었다.
하지만 힘겹게 러시아를 제치고 희망의 끈을 이어간 우크라이나는 슬로베니아에게 2:3으로 패하면서 유로 2000 본선 진출은 실패하였고, 양 팀의 혈전으로 1위를 차지한 프랑스는 지네딘 지단(Zinedine Zidane)이 MVP를 차지하는 활약을 선보이며 역대 2번째 우승을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