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11테러 현장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여성들의 모습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쓴 두 명의 여성이 폐허가 된 거리를 달리고 있다.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카메라 쪽을 바라보는 여성이 하이힐을 손에 들고 맨발을 한 모습은 상황의 급박함을 전해주고 있다.

이들은 2001년 9월 11일에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 1957~2011)이 이끄는 알카에다로부터 테러를 당한 뉴욕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에서 근무하던 여성들로, 극적으로 건물을 탈출하여 안전한 곳으로 달리던 중에 사진작가에게 포착되었다.

 

▲ 공격 당하는 세계무역센터

카메라 쪽을 바라보고 있는 여성은 당시 39세였던 조앤 카페스트로(Joanne Capestro)이다. 그녀는 테러범들에게 납치된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의 93층과 99층 사이에 충돌했을 때(오전 8시 46분), 87층에서 일하고 있다가 비상계단을 통해 달려내려왔다.

 

함께 있는 여성은 같은 직장의 동료인 도미니크 데이비스(Dominique Davis)로 탈출 후 거리에서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87층이라는 높이는 평상시에도 걸어서 내려오기 힘든 높이기 때문에, 두 사람은 아마도 정신이 완전히 나가있는 상태였을 것이다.


▲ 조앤이 들고 있던 하이힐은 9.11국립기념관에 기증되었다.

건물 내부에 있을 때는 화재와 충돌만 감지할 수 있었던 조앤은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끔찍한 참사의 규모를 제대로 볼 수 있었고, 부서진 잔해들과 건물에서 뛰어내린 사람들의 시신이 거리에 널브러진 것을 보고 공포에 질려버렸다.

 

이 모습을 촬영한 것이 뉴욕에서 일하던 사진작가 필 펜만(Phil Penman)이었다.

 

▲ 2018년에 만난 사진작가와 주인공

오랜 세월 동안 조앤은 자신의 모습이 누군가에게 촬영된 것도 모르고 있다가 2016년, 9.11국립기념관에 필 펜만의 사진이 전시를 위해 기증되는 과정에서 그녀를 알아본 직원의 연락으로 먼지를 뒤집어쓴 과거의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진작가와 주인공이 기념관 측의 주선으로 만남을 가졌다.

 

두 사람은 모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본인만 생존했다는 죄책감을 겪고 있었기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특히 조앤은 ‘필 펜만이 나의 인생을 되돌려주었다’고 감사해 했는데, 그 이유는 사진을 본 주변의 지인들이 그제야 ‘네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이제야 알겠어’라며 고통을 이해해 주었기 때문. 그야말로 사진 한 장이 천 마디의 말을 대신해 준 셈이었다.

▲ 2018년 8월 11일, 필 펜만은 조앤의 결혼식에서 사진 촬영을 자원했다.